가림막 없는 중국식 투표…세계는 '경악' vs 중국은 '익숙'
국제사회, "앉은데서 표기…투표용지 접지말라" 요구는 '공개투표' 지적
중국선 어릴 때부터 기표소없이 투표…전자투표함 도입후 투표용지 못접어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는 개헌안 투표가 99.79%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되자 국제사회는 예상보다 더 강력한 시 주석의 권력 장악력에 경악했다.
특히 개헌 표결을 취재했던 취재진 사이에서는 가림막이나 별도의 기표소가 없는 중국식 '무기명 투표 방식'이 압도적인 찬성률에 일조했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무기명 투표라면서 투표에 참여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단이 자기 자리에 앉아서 투표용지에 찬성, 반대, 기권 의견을 표기해야 했던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개헌 표결이 진행된 인민대회당 둥다팅(東大廳)은 매년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식 등 중국의 굵직한 정치행사를 개최하는 장소지만, 2천900명이 넘는 대표단이 앉았을 때 비밀을 보장하기에는 장소가 협소하다.
여기에 전자 투표함을 이용하는 투표 집계 방식도 전인대 대표단이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피력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전인대에서 국가주석 선출과 개헌 표결을 위해 사용하는 전자 투표함은 광학마크판독기(OMR)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투표장에서 공개된 투표용지는 A4용지 크기로 상단에 표결 목적을 나타내는 문구가 중국어와 소수민족언어 등 8개 언어로 표기돼 있고, 하단에는 찬성, 반대, 기권란이 인쇄돼 있다.
대표단은 찬성, 반대, 기권란 상단에 있는 흰색 표시란에 사전에 나눠준 기표용 펜을 이용해 투표해야 한다.
문제는 OMR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투표용지를 접거나 구길 수 없다는 점이다. 기표를 마친 대표단은 차례로 투표 결과가 바로 집계되도록 전자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반듯이 펴서 넣어야 한다.
이 과정 역시 '검표인'이라 불리는 투표 감독관이 투표함 바로 옆에 서서 참관을 하기 때문에 비밀투표에 대한 기대는 전혀 할 수 없다.
표결 주의사항은 투표 시작 30분 전 투표장 좌우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두 차례나 자세히 소개됐다.
중국에 비판적 성향을 띄는 중화권 매체와 서방언론은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독특한' 방식의 중국식 투표 방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이 같은 투표 방식은 아주 익숙하다.
중국 포털사이트에서는 쉽게 이런 방식으로 투표하는 중국 인민대표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인은 "대학에서 처음 인민대표를 선출할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투표를 해왔기 때문에 익숙하다"면서 "인민대표 역시 대학 당조직에서 미리 선정한 대표를 선출하는 형식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2일 전자 투표 집계 방식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개헌 투표가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통과된 것은 중국 당국의 엄격한 관리 아래 표결이 진행됐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비판했다.
SCMP는 "이번 표결에서는 논쟁과 토론은 물론 유세조차 없었다"면서 "1999년과 2004년 3, 4차 개헌 표결이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것과 비교해도 절반 이상 시간이 줄었을 정도로 일사불란하고, 빈틈없이 표결이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개헌안이 통과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반대여론에 대한 강력한 통제도 당국의 엄격한 관리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치 전문가인 패트리샤 돌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번 역사적인 투표에서 극단적으로 적은 반대와 기권표는 중국공산당 고위층 내에서도 논쟁은 물론 복수 의견에 대한 억압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런 지적에 대해 "지난해 9월 개헌안 논의가 처음 건의된 이후 118번의 서면 보고와 좌담회가 진행됐고, 2천639건의 개헌 의견서가 접수됐다"며 "개헌 과정이 민주적으로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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