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달인'이라지만…"TV쇼 아냐" 트럼프에 우려의 시선들

입력 2018-03-12 04:44
수정 2018-03-12 09:10
'협상의 달인'이라지만…"TV쇼 아냐" 트럼프에 우려의 시선들

"고위험 도박"…외교협상 경험 적고 대북라인 공백사태

"수싸움서 이기려면 철저히 준비해야…북한에 이용할까봐 걱정"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을 위해 가장 위대한 타결을 볼지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5월로 예정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러한 기대를 표했다. 그 바람이 현실화된다면 그는 '불안한 리더십'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중간선거 승리와 재선 가도의 전망을 높이게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세기의 담판'을 앞둔 그를 바라보는 워싱턴 조야의 시선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실패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세계 질서 내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에도 타격이 예상된다는 점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승부수를 놓고 "고위험 도박"이라는 말이 회자하는 이유이다.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달인'을 자처해왔지만, 그 어느 분야보다 정교한 접근이 요구되는 외교협상에서 충분한 경험이 없다는 점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 수락 과정에서 보여준 '파격'에서 보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유의 즉흥적 스타일은 불안함을 더해주고 있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 평가이다.

이에 더해 워싱턴 정가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러시아 스캔들'에 이어 백악관을 강타한 전직 포르노 여배우와의 '과거 성관계 스캔들'을 덮으려는 국내 정치용 셈법에 따른 것이라며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벤 로즈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전 부보좌관은 11일 "(북미협상은) 부동산 거래나 리얼리티 쇼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무부를 다루는 방식과 북한 이슈에 대해 변덕스러웠던 것 등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NN방송도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부담이 큰 외교적 협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도 이번 도박판을 키우는 요인"이라며 "부동산 거래와 고난도의 '핵 협상 기술'은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신을 '최고의 외교관이자 협상가, 전략가, 대변인'으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기'만을 믿고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협상장에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며 초기 기선제압에 나섰지만, 고도의 전략이 수반되는 북미 정상 간 '수 싸움'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34)와 동갑으로, 아들뻘이지만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선 정보 접근이 쉽지 않은 측면도 없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서 김 위원장에게 밀릴 경우 자칫 자신이 그동안 맹렬히 비난해온 전임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으며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어깨를 맞댄 김 위원장에게 '정상국가' 이미지만 선사하고 핵 개발 시간을 벌어주는 게 미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민주당 잠룡으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도 이날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매우 좋은 움직임"이라면서도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을 매우 걱정한다"고 지적했다.

철저한 사전준비 미비에 대한 우려는 무엇보다 빅터 차 주한미국대사 내정자의 낙마에 이은 조셉윤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은퇴 등에 따른 대북 외교라인의 공백 사태라는 현실과 맞닿아있다.

북한에 리용호 외무상, 최근 승진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미국과의 협상 경험이 풍부한 대미통이 포진해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상황이어서다.

지난 2년간 반관반민 트랙으로 북한과 비공식 대화를 이어온 수전 디마지오 뉴 아메리카재단 국장 겸 선임연구원도 10일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과 함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을 통해 "현 상황에서 최대 난제는 트럼프 행정부에 북한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인사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마지오 연구원은 "이러한 진공상태는 미국에 심각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백악관은 북한과 협상한다는 게 뭔지 알기 위해 경험 있는 외부 전문가들에게라도 손길을 뻗쳐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행정부를 재빠르게 움직여 북한의 진정성을 파악하면서 지속적이고도 생산성 있는 대화를 위한 기초를 세우는 일에 철저히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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