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도 美 철강관세 면제…한국도 빠질 수 있나
기대 있지만 처지 달라…한국은 美수출·中수입 많아 불리
USTR과 당장 협의도 쉽지 않을 듯…김현종 본부장 11일 귀국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어 호주도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대상에서 면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우리나라도 빠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안보협정을 매우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어, 우리의 동맹국이며 위대한 국가인 호주에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 재무장관인 스티브 므누신도 많은 나라가 무역 관세 대상에서 면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도 면제?…기대감 '솔솔'
앞서 트럼트 대통령은 지난 8일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오는 23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 명령의 근거는 무역확장법 232조다. 무역확장법 232조를 동원하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고강도 규제를 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 안보에 도움이 되는 동맹국은 이번 조치의 예외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 상대국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가장 먼저 빠졌고,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인 호주가 면제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우리나라도 미국과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력한 우방 관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관세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제기된다.
실제로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감지된다.
대북특별사절단의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최근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국을 철강 관세 부과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자,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모두 적극적으로 챙겨보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아직 '난관' 많아…美 안보·경제라인 이견
하지만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당장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에는 여러 '난관'이 많은 상태다.
우선 미국 정부 내에서도 안보라인과 경제라인의 의견이 미묘하게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라인은 혈맹이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은 당연히 관세 면제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 상무부 등 경제라인은 선뜻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산 철강이 미국 수입시장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의 수출 물량이 많은 데다 한국은 중국산 수입이 가장 많은 나라라 상당수 물량이 '환적' 형태로 미국에 재수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호주는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국 중 하나이지만 세계 철강 시장에서 수출은 미미한 실정이다. 지난해 미국에 3억1천만 달러 규모의 철강과 알루미늄을 수출하는데 그쳤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얽힌 복잡한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호주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왔다는 점도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액은 32억6천만달러를 기록, 전년보다 2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액만 따지면 호주보다 10배 이상 많은 것이다.
안보 분야에서는 수출 1위 대상국인 중국과의 관계로 인해 미국의 대외 정책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우리나라 통상당국은 대미 수출 품목 중 중국산 소재를 사용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며 작년 중국산 철강 수입은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는 점 등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우리나라의 대미 철강 수출은 2014년 대비 31.5% 감소했으며 미국 시장 점유율도 1.1%p(포인트) 줄었다는 점도 제시하고 있다.
◇ USTR 업무폭주로 협상 어려워…"실무협상으로 해법 찾는데 한계"
협상 대상인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에 업무가 폭주하고 있어 우리 의견을 진지하게 미국 측에 전달할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결정 발표 이후 영국, 일본, EU, 중국, 브라질 등 세계 주요국 대부분이 USTR 등 미국 측과의 협상에 일제히 달려들고 있다.
미국은 중요한 안보관계가 있는 국가가 철강 공급과잉 등 미국의 우려를 해소할 대안을 제시할 경우 관세를 경감 또는 면제해주겠다고 밝힌 상태라 어느 나라가 더 큰 '당근'을 제시하는지가 관건인 상황이다.
철강의 경우 세부 수출 품목이 100∼200개에 달하고 업체별, 나라별로 관세 부과 수준이 달라 USTR은 이에 대한 세부 분석에는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USTR로서는 나프타 협상 타결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철강 면제국 선정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주변 상황도 USTR로서는 급할 게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대원칙을 밝힌 이상 굳이 서둘러 철강 면제국 선정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는 23일 이전까지 USTR은 각국 실무진과 구체적인 협상 테이블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23일까지 협상이 잘 안 풀리면 관세를 물어야 하지만 미국이 협상 기한을 명시하지 않았기에 이후에도 협상 여지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형편이라 방미 중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11일 귀국해 여러 부처와 의견 조율 등을 통해 향후 협상 전략을 재정비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결국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국 선정 관련 사안은 통상당국의 실무라인 협상보다는 외교, 국방 등과 엮인 큰 그림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글로벌 무역 동향을 살펴보면 통상당국이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통상당국을 넘어 청와대 결정권자가 통상 관련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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