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맛 뒤에 숨겨진 사연…영화 '엄마의 공책'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엄마는 잔뜩 술에 취한 아들의 해장을 위해 늦은 밤에도 손수 동치미 국수를 만들어 내온다. 생선 비린내를 유독 싫어하는 손녀를 위해서는 멸치와 야채를 간장 양념에 볶아 주먹밥을 만든다.
늘 먹던 집밥이어서 아들은 몰랐다. 그 속에 어떤 사연이 담겼는지, 또 얼마나 깊은 엄마의 사랑이 담겼는지 말이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엄마의 공책'은 30년 넘게 반찬가게를 해오다 치매에 걸린 엄마 애란(이주실 분)과 뒤늦게 엄마만의 비법이 적힌 공책을 발견한 아들 규현(이종혁)의 이야기를 그린다.
시간 강사를 전전하는 규현은 자신에게만 유독 쌀쌀맞은 엄마가 못마땅하다. 그래도 엄마가 해주는 집밥은 누구보다 맛있게 먹는다.
엄마 애란은 고추장, 된장 등이 담긴 장독들을 보물처럼 아끼고, 항상 정성스럽게 반찬을 만든다.
늘 부지런하고 똑 부러지던 애란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행선지를 까먹는가 하면, 저도 모르게 신발 가게에서 어린이 운동화를 훔쳐 나오기도 한다. 또 멀쩡히 살아있는 아들이 죽었다고 말한다.
애란의 치매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아들, 며느리(김성은), 시집간 딸(이영아)은 한자리에 모여 대책 회의를 한다. 어머니를 누가 모실까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결국 현실적인 이유로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론 낸다. 애란 역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요양원으로 떠난다. 엄마가 살던 집과 반찬가게를 처분하려던 아들은 엄마의 공책을 발견한다. 그 속에는 '아플 때도 벌떡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벌떡죽', '소율이의 주먹밥' 등 엄마만의 레시피가 삐뚤빼뚤 손글씨로 적혀있다. 아들은 뒤늦게 엄마가 왜 자기에게만 유독 쌀쌀하게 대했는지도 알게 된다.
영화는 누구에게나, 어떤 가정에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담담하면서 현실적으로 그린다. 치매의 발견, 그로 인한 가족들의 충격 등이 다뤄지지만, 신파나 감정의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다. 절제된 연기와 연출은 오히려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경력 54년의 베테랑 배우 이주실(74)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연극 무대 위 모노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아들 내외로 나오는 이종혁, 김성은 역시 현실 부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이주실은 최근 열린 시사회에서 "자연인 이주실의 나이가 치매와 가깝고,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감정이 넘치지 않게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가족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등을 연출한 김성호 감독은 이번에도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영화를 선보였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누구나 똑같고 치매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면서 "치매를 너무 무겁게 다루지 않고, 가족들이 슬기롭게, 좋은 쪽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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