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반체제·극우당 간 연정주도권 다툼 '후끈'…결정권 민주당에
오성운동 "우리 빠진 연정,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동맹 "민주당, 우리 지지해달라"
민주당 주류, 연대에 미온적… "야당으로 남아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 4일 실시된 총선에서 과반 정당을 배출하지 못해 정부 구성이 난항에 빠진 이탈리아 정치권이 총선 1주일이 지난 이번 주부터 연정 구성을 놓고 물밑 협상에 들어갈 전망이다.
32%를 웃도는 득표율로 이탈리아 개별 정당 중 최대 정당으로 발돋움한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총선에서 최다득표를 한 우파연합에서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극우 성향의 정당 동맹 간 연정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서서히 달아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마테오 살비니(45) 대표가 이끄는 동맹은 이번 총선에서 약 18%를 득표, 25년 동안 우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1)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FI)를 따돌리고 우파연합 내 최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오성운동과 우파연합 두 세력 모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다른 정당과 손을 잡고 연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현재 양 진영 모두 집권 민주당과 손을 잡고 연정을 성사시키는 방안을 우선 순위에 놓고, 민주당에 구애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5년 간 국정을 이끈 집권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19%의 표를 얻는 데 그쳐 창당 이래 최악의 성적을 거뒀으나, 연정 구성의 결정권을 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됐다.
정가에서는 여러 가지 연정 시나리오 가운데 오성운동이 민주당과 손을 잡고 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루이지 디 마이오(31) 오성운동 대표는 이런 세간의 예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신문들이 그렇게 쓰고 있지만,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정당과 교섭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한결 같은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9일 공개된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내달 10일까지 민주당 주도로 작성될 예정인 다년 간의 경제 계획에 우리의 제안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며 "이 제안이 다른 정당과의 연정 합의를 위한 기준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해 경제 정책을 중심으로 제휴를 타진할 것임을 내비쳤다.
오성운동의 상원 원내총무 후보로 꼽히는 다닐로 토니넬리는 이와 관련, "기본소득, 세금 인하, 반부패 법안 등 우리가 추진하는 정책에 동의하는 세력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디 마이오 대표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는 "국민이 최대 정당으로 뽑아준 오성운동이 배제된 정부는 있을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완전한 모욕이 될 것"이라고 밝혀, 오성운동 중심으로 정부가 구성돼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반면, 살비니 동맹 대표는 최다 의석을 확보한 우파연합 중심으로 연정이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탈리아가 총선 후 교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주당이 우파연합이 주도하는 정부를 지지해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정부의 초점은 일자리에 맞춰져야 한다. 우리의 (국정운영)프로그램은 일자리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제안을 담고 있다"며 민주당과 경제 정책을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살비니 대표는 아울러 자신들의 경제 정책은 "EU가 원하는 것의 반대가 될 것"이라며 "EU는 이탈리아가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길 원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탈리아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세금 감축이라는 정반대 정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측근인 레나토 브루네타 의원 역시 이날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우파연합 주도의 연정 구성에 있어 민주당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를 타진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 민주당과의 연정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 "연정을 이끌 총리는 우파연합에서 나와야 하겠지만, 좀 더 광범위한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총리 후보가 꼭 살비니일 필요는 없다"고 말해 민주당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극우 색채가 강한 살비니 대신 좀 더 온건한 인물을 총리로 내세울 수 있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처럼 양쪽에서 구애를 받고 있는 민주당의 현재까지의 주된 입장은 두 세력 모두와도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어서 정부 구성 작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를 선언한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대로 야당으로 남아야 한다"며 오성운동, 동맹과의 연대에 결사 반대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비주류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오성운동은 물론 우파연합과 손을 잡는 것에도 마뜩잖아 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지향점이나 가치관이 다른 오성운동이나 동맹과 힘을 합쳐 연정을 구성할 경우,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남아 있는 약 20%의 핵심 지지층마저 민주당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걱정해야 한다. 차라리 비판적인 야당 역할을 하며 당을 바닥부터 재건하는 쪽이 미래를 위해서는 더 바람직하다는 게 민주당 내부의 주된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끝내 어느 쪽과의 연대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오성운동과 동맹이 전격 손을 잡는 방안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이는 EU에 회의적이고, 난민에 적대적이며, 재정 지출 확대를 약속하고 있고, 서방과 긴장관계인 러시아에 우호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포퓰리즘 세력과 극우 세력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EU나 시장이 가장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로 꼽힌다.
한편, 총리 임명권을 갖고 있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은 우선 오는 23일 각 정당들이 상하원 의장을 뽑은 뒤에야 각 정파 수장들을 대통령궁으로 불러모아 새 정부 구성을 위한 공식 교섭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가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4월 초는 돼야 총리 지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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