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관리하는 日…통상문제 터지면 미국 달려가는 韓
대미 공공외교·기업로비 역량 부족…김현종 개인기 의존
순환보직에 경직된 통상 조직…USTR은 '양보다 질'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최근 철강 관세를 비롯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신(新)보호무역주의에 우리 기업들이 계속 궁지에 몰리면서 정부가 대미(對美) 통상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미국과 수출에 목을 매는 우리나라의 통상 역량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힘의 차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통상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통상 조직을 보강하는 모습은 평소 미국에 관련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착실히 대비해온 일본과 대비된다.
◇ 美 브레인 먹여 살리는 일본 자금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발간하는 연차보고서에는 주요 기부자 명단이 있다.
11일 작년 보고서를 보면 도요타, 전일본공수(ANA), 미쓰비시 그룹, 니혼게이자이신문, 노무라재단, 도쿄미쓰비시UFJ은행, 혼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의 대표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 전담조직인 '글로벌 파트너십 센터(CGP)', 주미일본대사관, 일본경제협력기구 등 공적 부문도 1억원 이상 기부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SK홀딩스 한 곳뿐이다.
한국무역협회,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국방연구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들의 기부액을 합쳐도 CGP 한 곳보다 작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평소에 네트워킹 관리를 하고 중요한 싱크탱크에 기업이나 정부가 돈을 대서 일본 사람을 앉혀 놓는 경우가 많다. 통상문제가 터지면 이 사람들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민간과 관료 조직의 인력 교류가 활발한 미국에서는 싱크탱크 출신이 고위 관료로 가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도 장관 지명 당시 브루킹스연구소 이사였다.
◇ 한우물 파는 USTR…김현종만 바라보는 韓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에서도 인정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한미FTA 체결협상 당시 김 본부장을 상대했던 웬디 커틀러 전 USTR 부대표도 "업무능력에 정평이 난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김 본부장에 대해 "해외에서 특히 강점이 더 발휘되는, 우리와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능력을 높게 사 그를 임명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김 본부장이 통상교섭본부를 떠나있던 지난 10년간 정부가 그만큼 미국 인맥을 가진 인재 풀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된다.
지난 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국장급만 여럿 나왔지만, 한국은 유명희 통상정책국장 한 명이었다.
특히 USTR은 한미FTA 체결협상을 담당했던 관료 다수가 아직 같은 자리에서 현 개정협상에 참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체결협상 당시 분과장을 맡았던 국장급 공무원 상당수가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USTR은 1~2년마다 보직을 순환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농산물, 서비스, 지식재산권 등 분야별로 전문성을 키운다.
산업부 관계자는 "USTR은 전체 300명이 안 되기 때문에 큰 조직은 아니지만, 그 분야 업무만 계속 담당하기 때문에 고참급이 많다"고 말했다.
◇ 인재 등용 자유로운 美 관료 조직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지난해 6월 취임 한 달 만에 USTR 고위급 8명의 인사를 발표했다.
대부분 대형 로펌이나 정치인 보좌관 경력을 지녔고 그리어 비서실장 등 3명은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30년을 몸담은 스캐든 출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보호무역주의를 실현하는 데 가장 손발이 잘 맞을 인사를 손수 고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통상교섭본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 지났는데도 인력 증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산업부는 작년부터 조직 보강을 추진했지만,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협의가 지연됐고 최근에야 1실 50명 증원에 합의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달리 김 본부장은 대외 직함만 장관이지 인사권이 없어 자기 사람 한 명 뽑기 쉽지 않다.
통상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관료 조직은 문호가 개방된 미국과 달리 고시 출신 중심으로 돌아가고 인사 제도가 경직돼 민간 영역의 다양한 인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 정부만 바라볼 수 없다
브루킹스연구소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기업들은 대미 로비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사업 확장에만 신경 쓰고 통상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은 오래전부터 무역장벽의 주요 타깃이었지만 포스코는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야 워싱턴 D.C.에 통상사무소를 설립했다.
삼성그룹은 2016년 164만 달러를 지출했지만, 작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350만 달러로 늘렸다.
미 상원의 로비 데이터베이스에 도요타는 작년 로비 지출로 약 580만 달러를 신고했지만, 현대차는 76만 달러다.
통상 전문가들은 기업도 통상 전문 인력을 키우고 통상문제를 최소화하는 형태로 투자나 수급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업들이 활발한 민간 외교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통상 전문가는 "정부의 공공외교 예산도 없는데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이런 곳에 돈 쓰는 것을 굉장히 주저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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