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의회서 눈물 떨군 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한국계 입양아출신 여당의원, 한불친선의원협회장 등 만나 고통스런 과거 증언
유네스코 앞 1인 시위도…의원들 "도움 드릴 방안 찾아보겠다"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아직도 당시의 일을 얘기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내가 그 역사의 산증인인데, 일본이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너무 뻔뻔하잖아요."
프랑스 의회를 방문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90)는 끝내 눈물을 떨궜다.
이용수 할머니는 세계여성의 날인 8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의 하원의사당에서 조아킴 손포르제 프랑스 하원의원, 카트린 뒤마 상원의원, 장뱅상 플라세 전 국가혁신 담당 장관, 의회 직원들을 만나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은 끔찍했던 참상들을 증언했다.
그는 15세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해군함정을 거쳐 대만에 주둔하던 일제의 자살특공대(카미카제) 부대에서 겪었던 일제의 가혹한 폭력과 인권유린, 전쟁의 처참함을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줬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상세히 얘기하는 게 지금도 너무 힘들다"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런 고통의 증언과 절규는 통역을 거치기도 전에 프랑스 의원들에게 전해졌고 이들의 얼굴은 무거운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이용수 할머니는 올해 아흔이지만, 현재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2007년에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위안부 경험을 증언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 하원은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로부터 11년이 흘렀지만, 이제 증언을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한 번이라도 더 외국에서 일제의 잔악상을 알리려고 프랑스행을 택했다.
이번 방문에는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도와온 양기대 광명시장과 한국계 입양아 출신으로 정계를 잠시 떠나 한불 친선재단 '다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는 플라세 전 장관의 설득이 힘이 됐다.
프랑스 집권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 소속으로 또한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조아킴 손포르제 하원의원도 이 할머니를 따뜻하게 맞았다.
이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울먹이면서도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런 증언은 내 생명과도 같다. 여성인권운동가로 평화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상원 한불친선협회장인 카트린 뒤마 의원은 이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널리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뒤마 의원은 특히 "세계여성의 날인 오늘 이렇게 용기를 갖고 단호하게 증언해주셔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장 오늘 여러 동료 여성의원들에게 이 문제를 얘기하고 싶다"면서 위안부 문제에 도움을 드릴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손포르제 의원은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진정성 있는 사과로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보면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에서 항상 피해자는 무고한 시민, 특히 약자인 여성과 아동들"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전쟁 가능성을 줄이려는 문재인 정부의 대화를 통한 긴장완화 노력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하원 방문을 마치고서는 파리의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본부 앞에서 1인 시위도 했다.
유네스코는 최근 한국과 일본 등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이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보류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플라세 전 장관은 다른 프랑스 정계의 지인들과 함께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뒤에서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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