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명을 죽인 잔악한 테러범을 변호해야 하는 이유는
노르웨이 77명 학살범 변호사의 이야기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정부청사 앞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이후 집권여당인 노동당의 청소년캠프가 있는 인근 우퇴위아섬으로 이동해 여름캠프에 참가 중인 청소년들에게 총기를 무차별 난사했다. 그는 이슬람을 혐오하고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극우주의자였다. 77명의 희생자를 낸 이 사건은 노르웨이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신간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그러나 펴냄)는 범인 브레이비크의 변호를 맡았던 예이르 리페스타드 변호사가 '왜 악마의 변호사를 맡았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가 처음 브레이비크의 변호를 맡게 된 것은 변호사라는 직업의 본질을 성찰한 결과였다.
체포된 브레이비크는 당국에 리페스타드가 자신의 변호를 맡게 해달라고 지정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의 당원이기도 한 저자는 갈등했고 처음에는 변호를 거절할 생각에 간호사였던 부인에게 상의한다. 당연히 거절하라고 할 줄 알았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그 남자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온다면 의사는 수술하고 우리 간호사는 그를 돌봐야 해요.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또는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묻지 않죠. 그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당신의 직업 아닌가요."
이후 브레이비크에게 저자는 "심문을 받을 때, 구금 상태, 재판과정에서 법적 권리만큼은 최선을 다해 지켜드리겠다. 당신이 받아 마땅한 형벌을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그의 변호를 맡았다.
그러나 테러범의 변호를 맡은 그에게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브레이크의 변호를 맡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법치국가'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다. 법치국가에서는 결과가 당연시된다 해서 누구도 요식적인 재판과 허술한 변론으로 심판받아서는 안 되며 많은 인명을 살상한 살인범이라도 그의 법적 권리를 보호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노르웨이 사회가 법치국가로 남도록 지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범인이 파괴하려고 했던 바로 그 체계를 보호하는 일이 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또 노르웨이라는 국가를 떠받치는 근본가치가 민주시민에게 보장된 기본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 역시 브레이비크가 공격하고 파괴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변호를 맡은 13개월간의 과정을 따라가는 책은 지나칠 정도로 민주주의라는 사회의 근본가치를 존중하고 강조하는 노르웨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브레이비크는 교도소에서도 유럽 극우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이를 통해 추종자를 거느리며 일종의 '컬트'적 지위에 올랐다.
이를 두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테러리스트들이 마음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허용해도 좋은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지만 저자는 역시 사상의 자유와 의사 표현의 권리를 이야기한다.
그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지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권리라는 이름 아래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 금지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극단주의적 발상의 정체를 폭로하기에 충분한 반대 의견을 견실히 다져가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변호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에 대해 병원에서 자신을 알아본 이민자들이 어깨를 다독여줬던 일화를 소개하며 "이것이야말로 사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에 사는 모든 사람은 문화, 종교, 인종에 상관없이 공동의 근본가치로 통합돼 있다. 내 의뢰인이 다른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을 유럽에서 추방하려는 목적을 추구할지라도, 그가 나를 변호인으로 선택했을지라도, 다른 문화권의 다른 종교를 가진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병원에서 내 어깨를 다독여줬다. 나는 이처럼 진솔한 인간적 온기에 놀라면서도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우리의 작은 땅 노르웨이에 사는 모든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새삼 명확히 깨달았다."
브레이비크는 2012년 8월 법정 최고형인 21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김희상 옮김. 24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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