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는 급반전…이란핵 문제는 다시 '급속 냉각'

입력 2018-03-07 16:32
북핵 위기는 급반전…이란핵 문제는 다시 '급속 냉각'

미국, 북핵 해결하고 이란 압박에 집중할 가능성

한국과 같은 중재역할 없어 이란 핵위기 점증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핵문제는 급속히 해결 국면으로 진전되고 있지만 이란 핵문제는 빠른 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2015년 7월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역사적으로 타결한 핵협상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파기하겠다고 위협하는 탓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부터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를 공약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제한, 핵프로그램 제한 일몰조항 폐지 등 다른 조건을 담아 핵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대(對) 이란 제재 유예를 연장하면서 5월12일까지 이란이 재협상하지 않으면 핵합의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5일(현지시간) 미-이스라엘 공공위원회(AIPAC)에 참석해 "이란 핵합의의 결점이 몇 달 안에 고쳐지지 않으면 미국은 핵합의를 당장 탈퇴하겠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좌시하지 않겠다"고 연설해 환호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정한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란도 강경 기류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핵합의 파기 위협에 대해 그간 유럽과 함께 핵합의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란 고위 인사들이 최근 잇달아 핵합의가 미국의 방해로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면 '탈퇴'할 수도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이란 원자력청은 5일 "미국이 핵합의를 파기하면 이틀 안에 농도 20%의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겠다"고 구체적인 행동계획까지 발표했다.

미국과 이란의 중간에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핵협상 당사국이 핵합의를 살리기 위해 탄도미사일을 안건으로 협상하자는 중재안을 이란 정부에 제안했으나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이란 정부는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이 자주국방과 주권에 해당한다면서 아예 협상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할 만큼 완강하게 거부한다.

미국은 이란이 탄도미사일 개발에 집중하는 것은 핵합의 이행 뒤에도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못한다고 의심하고,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0차례 사찰 보고서를 통해 비핵화를 검증했다고 맞선다.

미국과 이란의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양보없는 갈등이 급속히 커지면서 3년 전 핵협상타결로 해빙됐던 이란 핵문제가 다시 중동의 최대 불안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북핵 문제와 달리 이란 핵문제가 급속히 위기로 치닫는 데엔 미국과 긴장 국면에 한국과 같은 혈통과 지정학적으로 이어지면서 미국과 긴밀히 협조할 수 있는 직접 중재자가 없는 탓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동에는 한국과 같이 이란과 혈통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직결된 정부가 없다. 이란은 아랍계가 아닌 데다 지정학적 인접국인 터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과도 비교적 우호적이어서 이란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란 핵협상은 오만이 중재역할을 했지만 한국과 달리 이란이 핵을 보유했을 때 직접 위협받지는 않는다. 중동, 유럽을 통틀어 이란 핵문제에 중재자로 나서는 제3국은 있지만 제 일처럼 적극적으로 나설만한 나라를 찾기 어렵다.

이란과 긴밀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문제에서 한국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으나 이들 두 강대국은 미국과 관계가 소원하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 사우디아라비아는 북핵에서 일본과 같은 존재로 경쟁국 이란이 미국과 충돌하는 상황을 국내외적으로 오히려 기회로 본다.

북핵 해결의 진전이 파국의 위기로 치닫는 이란 핵문제에 되려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간 이란, 유럽 등 핵합의를 지지하는 진영은 미국이 핵합의를 먼저 어기면 신뢰에 타격을 입어 북한도 미국을 믿지 못해 북핵 문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지난해 9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미국이 핵합의안을 깨려 한다면,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미국이 북핵과 이란핵 위기를 동시에 대처하기엔 부담스럽다면서 핵합의를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북핵 위기가 한국을 중간에 두고 북미 대화까지 언급될 만큼 급반전되면서 이런 논리는 힘을 잃게 됐다.



오히려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란에 압박을 집중할 공산도 커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파격적인 대화 공세가 경제 제재와 봉쇄의 결실이라고 이해한다면 핵합의 파기를 무릅쓰고라도 대이란 제재를 더 강화할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라는 한반도 정책 기조로 북한과 대면하지 않고 이란과 직접 대화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그 반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란에 대한 미국의 공세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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