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제1당 오성운동 '중도좌파와 연정' 무게

입력 2018-03-07 10:37
이탈리아 제1당 오성운동 '중도좌파와 연정' 무게

반기득권 성향 속 기본소득·친환경 등 좌파색채

참패한 집권당 민주당과 제휴 성사될까 시선 집중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이탈리아 총선에서 제1당으로 떠오른 반체제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이 좌파·중도 좌파와의 연정 구성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 오성운동이 새 정부 구성을 위해 선호하는 선택지로서 좌파·중도좌파 성향 정당들과의 연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오성운동이 연정 구성을 위한 좌파·중도 좌파와의 예비 교섭을 성공리에 마친다면 극우 성향의 '연맹'당 주도의 우파 정부 구상을 좌절시킬 수도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오성운동은 지난 4일 시행된 총선에서 단일 정당으론 최다인 32%를 얻었지만, 정부 구성을 위해 필요한 하한선으로 인식되는 득표율 40%에 미달해 다른 정당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루이지 디 마이오(31) 오성운동 대표는 총선이 끝난 뒤 모든 정당과의 대화를 추진해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하지만 디 마이오 대표의 한 측근은 "그가 좌파 정당들에 대한 움직임을 먼저 쳐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오성운동이 눈여겨보는 정당에는 총선에서 패배한 집권 중도 좌파 민주당(PD)도 포함돼 있다.

오성운동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민주당과 대화를 위한 공간의 여지가 얼마나 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화적으로 오성운동은 다른 정당과 연합하기가 어렵겠지만 아마도 중도 좌파와의 연대가 동맹당과의 연대보다는 덜 충격적일 것"이라며 민주당과 협상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했다.

오성운동은 선거 기간 좌파·우파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성운동의 오성(五星)이 물, 교통, 개발, 인터넷 접근성, 환경 등 5가지를 지칭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환경과 서민 경제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에서 좌파적 색채를 띠고 있다.

또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한 점에선 민주당과 비슷한 정책 기조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 지명권이 있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도 오성운동과의 연대 옵션을 고려해보라고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애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약 19%의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동맹이 포함된 우파연합과 오성운동 두 세력 모두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터라 민주당이 연정의 한 축으로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민주당에서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드세다는 점이다.

총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국민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처럼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며 오성운동과의 연대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앞선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민주당은 오성운동을 비롯한 극단주의 세력과는 결코 연정 구성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성운동과 동맹은 민주당을 모욕한 세력이고, 우리의 가치에 반대된다"며 "그들은 반(反)유럽적, 반정치적일 뿐 아니라 증오의 언어를 사용해왔다"고도 했다.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자대학의 마티아 딜레티 정치학과 교수는 "각 정당이 오는 23일 상원 의장 선출을 위한 투표를 한다면 이는 민주당과의 거래가 성사됐는지를 보여주는 첫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성운동의 통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그 의사 결정 구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뿐만 아니라 이 정당의 설립자 베페 그릴로(69)가 중요 의사 결정권자로 거론되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의 그릴로는 부패한 기성 정치권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 운동을 펼치겠다고 천명하며 2009년 컴퓨터 공학자인 고(故) 잔로베르토 카살레조와 손잡고 오성운동을 공동 창립한 인물이다.

그릴로는 지금도 오성운동의 방향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결정권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작년 9월 오성운동 당 대회에서 당 대표직을 당시 하원 부의장인 마이오에게 물려주고 2선으로 후퇴했으나, 이탈리아 정치권은 여전히 디 마이오를 막후에서 조종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8일자 보도에서 막후에서 오성운동을 관리하는 '의문이 남성'이 있다고 보도하며 그 주인공으로 IT(정보기술) 사업가인 다비데 카살레조(42)를 지목했다. 다비데는 오성운동 공동설립자 고 잔로베르토 카살레조의 아들이다.

비평가들은 정치 활동가이기도 한 다비데가 오성운동 내 공식 직함은 없지만, 배후에서 그 당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NYT는 전했다.

이와 함께 오성운동 특유의 결정 시스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성운동은 총선, 지방선거 등 매번 선거마다 출마 희망자들을 '루소'라 불리는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신청받은 뒤 당원들의 인터넷 투표로 최종 후보를 뽑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루소는 직접 민주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인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의 이름을 따 명명된 것으로, 주요 선거에 나설 후보 선출뿐 아니라 주요 정책 결정과 의견 수렴 등도 루소에 기반한 온라인 투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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