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엔 장애가 없다" 박항승-권주리 부부의 평창패럴림픽

입력 2018-03-07 07:47
"사랑엔 장애가 없다" 박항승-권주리 부부의 평창패럴림픽

절단장애 박항승, 아내 권주리씨 만난 뒤 장애인스노보드 대표팀 꿈 이뤄

"남편이 평창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그 날은 내 꿈도 이뤄지는 날"



(평창=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2011년 어느 날. 연극배우 권주리(31) 씨는 지인으로부터 소개팅을 제의받았다.

소개팅 상대가 장애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권 씨는 개의치 않았다.

권 씨는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깨고 싶진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팅 장소에 나갔다"고 말했다.

약속 장소엔 말끔한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띤 박항승(31)이 앉아있었다.

그는 밝고 유쾌했다. 매력적인 남자였다.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가 없다는 것을 빼면 그랬다.

남다른 성격의 권주리 씨는 박항승의 장애를 큰 흠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핸디캡에 주눅이 들지 않는 모습이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 자신감이 넘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년 동안 친구 사이로 지내다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권주리-박항승 커플은 여느 연인과 다를 것이 없었다. 여느 비장애인 커플보다 더 뜨겁게 사랑했다.

박항승은 권주리 씨가 즐겨 타던 스노보드까지 섭렵했다.

스노보드광이었던 권주리 씨는 "항승 씨와 함께 타면 좋겠다고 생각해 흘리는 말로 권유했는데, 온 힘을 다해 스노보드를 배우더라"라고 말했다.

박항승은 권 씨를 따라 처음 찾은 스키장에서 이를 악물고 스노보드를 탔다.

의족이 스노보드에 들어가지 않자 수건으로 감쌌고, 한쪽 팔이 없어 균형이 맞지 않자 몸을 기울여 중심을 잡았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외국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들의 영상을 돌려봤다.

박항승은 스노보드에 푹 빠졌다. 그리고 2014년, 박항승은 새로운 꿈을 품었다.

장애인 스노보드가 정식종목이 되는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선수로 뛰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특수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박항승은 직장을 그만두고 스노보드에 전념했다.



권주리 씨는 "허락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 마음껏 살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건을 걸었다. 권 씨는 "평창패럴림픽까지 남은 3년 동안만 도전해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박항승이 훈련에 전념하는 동안 필요한 생활비는 약 7천만원.

아끼고 아껴도 그 밑으론 내려가지 않았다.

권 씨는 "계산해보니 내 수입으로 생활은 되겠더라. 항승 씨의 도전을 응원하기로 결심하고 스노보드 선수로의 전직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비록 수입은 없었지만, 박항승은 자신의 꿈을 향해 이를 악물고 달려갔다.

그 사이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스키장에서 웨딩사진을 찍고, 결혼식은 스키장 리조트에서 했다.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이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큰 힘을 얻은 박항승은 스노보드에 모든 것을 걸었다.

보통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들은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지만, 박항승은 둘 다 없어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몸의 균형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그는 훈련량으로 자신의 약점을 메웠다.

하루에 8~9시간씩 훈련에 매진했다. 비장애인도 소화하기 힘든 고난도 근력 훈련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땀은 결과로 나왔다. 그는 2015년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신인 선수로 뽑혔고 1년 뒤엔 국가대표가 됐다. 그리고 2018 평창패럴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박항승은 6일 웨딩사진을 찍었던 '추억의 장소'이자 평창패럴림픽 훈련 장소인 강원도 용평리조트에서 밝은 미소로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아내와 약속을 지키게 됐다"라며 "목표는 메달 획득이지만, 꼭 메달을 따지 못해도 괜찮다. 아내 앞에서 3년 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12일 지형지물 코스를 타고 내려오는 스노보드 크로스, 16일 기문 코스를 회전해 내려오는 뱅크드 슬라롬 경기에 출전한다.

그의 주 종목은 지난해 9월 장애인스노보드 월드컵에서 4위를 기록한 뱅크드 슬라롬이다.

아내 권주리 씨는 이틀 모두 경기장을 찾아 남편이 펼치는 도전을 지켜볼 계획이다.

권 씨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큰 경기를 앞둔 남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묻는 말에 "넘어지더라도, 기대 이하의 기록이 나오더라도 남편이 웃음 지으며 꿈의 무대를 즐겼으면 좋겠다. 남편이 평창 무대에 서는 그 날은 내 꿈도 이뤄지는 날이다"라고 말했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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