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가격 오르고 수출늘자 일본서 "도벌" 횡행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 지바(千葉) 현에 사는 에비하라 히로미(海老原裕美 60)씨는 작년 오랜만에 고향 미야자키(宮崎)를 찾은 김에 자기 소유의 산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울창했단 삼나무가 벌목돼 사라진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부친이 생전에 돌보던 산이었으나 18년 전 돌아가신 후 소유권만 이전한 채 방치해 두고 있던 산의 나무가 잘려나간 채 가지 등 쓸모없는 잔해만 훼손된 산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국토의 3분의 2가 삼림인 일본에서 요즘 산 주인이 모르는 사이에 나무를 베어 가는 '도벌'이 횡행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유수의 목재 수입국이지만 최근 목재 가격이 오르고 중국 등 해외 수출이 늘면서 주인 몰래 나무를 베어 가는 사건이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일본의 작년 목재수출액은 326억 엔(약 3천260억 원)으로 38년 만에 300억 엔을 넘어섰다. 특히 중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
NHK에 따르면 삼나무 통나무 생산량 전국 최고인 미야자키 현에서 도벌이 잇따르고 있다.
에비하라씨 소유 산의 도벌사건과 관련, 용의자 2명이 올 1월 삼림 절도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명 모두 삼림매매 중개업자였다. 이들은 보통 산 소유주에게서 벌채권을 사들여 업자에게 전매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소유자의 허락 없이 벌채권을 팔아넘겨 100만 엔(약 1천만 원) 이상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이들의 수법은 먼저 범행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소유자가 산 소재지를 떠나 사는 산을 찾아낸다. 등기부를 열람해 산의 지번을 알아낸 다음 소유주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등기부를 통해 현지를 떠나 사는 사람의 산을 확인한 후 가까운 곳에 친척이 사는지를 파악했다.
적당한 대상이 정해지면 산의 꼭대기 쪽이나 외진 곳의 나무를 도벌했다. 톱 소리가 마을에 들리지 않고 혹시 누군가의 눈에 띄더라도 소유주가 벌목하는 것처럼 위장하기 쉬워서다.
이렇게 도벌된 통나무는 정식절차를 거쳐 벌목한 통나무와 섞어 경매에 부친다. 경매에서 통나무를 구매하는 한 업자는 "도벌한 목재가 섞여 있어도 유통과정에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법의 맹점도 지적되고 있다. 통나무를 경매에 부칠 때 제출해야 하는 증명서에 벌목장소와 면적만 적으면 된다. 산에서 구체적으로 몇 그루를 베었는지는 적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증명서만 보아서는 몇 그루를 베었는지 알 수 없다.
도벌이 횡행하자 정부도 지난달부터 긴급 피해실태조사에 나섰다. 미야자기대학 농학부 후지카케 이치로 교수는 "2차 대전 후 전국 각지에서 인공림을 조성해 이제부터 베어낼 시기"라고 지적하고 "지금은 규슈(九州)지방이 벌목 시기를 맞고 있지만, 앞으로 혼슈(本州)와 도호쿠(東北) 지방으로 옮겨가는 만큼 앞으로 도벌이 전국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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