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중단·낙마…공연계 거물들의 '부끄러운 퇴장'
수현재컴퍼니 폐업·뮤지컬 '웬즈데이' 취소 등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공연계 거물들의 퇴진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 배우 조재현이 대표직을 맡고 있는 공연제작사 수현재컴퍼니는 조만간 폐업 수순을 밟기로 했다.
조재현이 지난 24일 "일시적으로 회피하지 않겠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입장문을 낸 데 대한 후속 조치다.
수현재컴퍼니 관계자는 6일 "현재 공연이 진행 중인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와 연극 '에쿠우스'를 끝으로 폐업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조재현이 대학로에 세운 극장인 수현재씨어터 운영 방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수현재컴퍼니는 관객이 점점 줄고 있는 연극 무대에 스타 배우들을 기용하는 전략으로 화제를 이끌었지만, 회사의 얼굴 격인 조재현이 연극, 방송 현장에서 성희롱했다는 제보에 휩싸이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뮤지컬계 대부'로 불려온 윤호진 연출의 대형 신작 '웬즈데이'도 제작이 취소됐다.
에이콤 관계자는 "공동 주최 측인 예술의전당과 논의를 통해 제작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웬즈데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뮤지컬로, 오는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었다.
지난달 28일 제작 발표회를 코앞에 두고 터진 성추문에 결국 공연 자체가 엎어졌다.
윤 연출은 지난 24일 발표한 공식 사과문을 통해 "제 거취를 포함해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투' 폭로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김석만 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 교수도 국립극장장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지만 탈락했다.
그는 공모를 통해 결정되는 신임 국립극장장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혀왔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후보 전원에 대해 '적격자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한예종도 김석만 전 교수를 명예교수직에서 해촉하기로 했다.
'연극계 거장'으로 불리던 연출가 이윤택은 단원들에게 성폭력을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고, 또 다른 원로 연출가 오태석은 쏟아지는 성추행 의혹에 잠적한 상태다.
거물들로 불리던 인물들이 줄줄이 성폭력 파문에 휩싸임에 따라 공연계는 참담함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누구랑 작품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여 썩어버린 뿌리를 뽑고 문화계 세대교체를 이뤄낼 기회라는 시각이 많다.
공연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2~3년씩 걸리는 공연계 특성상 공연계 '빅 네임'들의 잇단 퇴진으로 올해 연말과 내년 초까지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 지원과 기회가 쏠리는 현상으로 공연계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을 줬던 것도 사실"이라며 "도덕과 윤리에 대한 철저한 기준 정립, 다양한 예술가들이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판 조성 등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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