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그리고 다음 숙제는 평등·다양성"…올해 오스카 메시지
저드·소르비노 등 와인스틴 성폭력 초기 고발자들 '연대 목소리'
성희롱 의혹받은 레드카펫 진행자 시크레스트 '어색한 인터뷰'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올해 아흔 번째를 맞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4일 오후(현지시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4관왕(작품·감독·미술·음악상) 소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이번 시상식은 지난 1월 골든글로브 때와는 달리 검은 드레스로 통일된 거대한 '미투'(MeToo)의 물결은 보이지 않았지만, 성폭력 저항을 위한 지속적인 '타임즈업' 캠페인과 양성평등, 다양성을 위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식전 레드카펫 행사 진행자로 성희롱 의혹이 불거진 라이언 시크레스트를 계속 기용한 선택은 오점으로 남았다는 지적이다.
올해 거의 모든 시상식을 관통하고 있는 공통 주제인 '미투'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강하게 울려 퍼졌다.
'미투'를 촉발한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초기 고발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와인스틴의 성폭력을 최초 고발한 여배우 중 한 명인 미라 소르비노는 시상식 무대에서 "현상은 이제 더는 현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면서 "미래의 영화 제작자들은 아름다움, 진실, 정의를 떠받들어주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시 용기를 내 와인스틴을 고발한 애슐리 저드는 시상자로 나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변화는 새로운 목소리들의 강한 울림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우리가 연대해 '타임즈업'이라고 외친 그 강력한 합창이다"라고 말했다.
저드는 "다음 90년은 평등, 다양성에 힘을 주자. 그것이 올해가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셀마 헤이엑, 애너벨라 시오라 등 와인스틴 스캔들의 피해자들이 힘을 보탰다.
타임즈업 결성을 주도한 애바 더버네이와 쿠마일 난지아니, 배리 젱킨스, 리 대니얼스 등이 연대의 틀을 짰다.
진행자 지미 키멜은 할리우드의 다음 숙제로 '양성평등'을 제시했다.
그는 억만장자 J.폴 게티 손자 유괴사건을 그린 스릴러 '올 더 머니'(원제:올 더 머니 인 더 월드)에 등장하는 남자 배우 마크 윌버그와 여자 배우 미셸 윌리엄스의 급여(출연료) 차이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유리 천장이 무너지고 있다며 8년 만에 여성으로서 감독상 후보에 오른 '레이디 버드'의 그레타 거위그를 가리켰다.
거위그는 여성 영화인들을 향해 "당신의 영화를 만들라. 우린 당신의 영화를 원한다. 난 당신의 영화를 원한다"고 소리쳤다.
최초의 여성 촬영상 후보 레이철 모리슨도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거위그와 함께 아카데미에 한 획을 그었다.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수상소감으로 "이 자리의 모든 여성 후보들이여 일어서라. 주변을 돌아보라. 우리에겐 말할 스토리가 있고 해야 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백인 남성이 지배해온 각본상의 벽은 '겟아웃'의 흑인 감독 조던 필이 깨트렸다.
필은 최초의 흑인 오스카 감독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각본상으로 아쉬움을 달렸다. 흑인의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은 처음이다.
필은 "난 이 영화 대본을 20번 정도 그만두려 했다. 이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를 올려주고 내게 영화를 만들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라며 그간의 고뇌를 드러냈다.
레드카펫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겼다고 할리우드 연예매체들이 지적했다.
NBC 유니버설 자회사 E!의 레드카펫 진행자 시크레스트는 과거 함께 일한 스타일리스트로부터 성희롱 의혹이 불거진 상태였다.
스타일리스트는 구체적으로 시크레스트의 성희롱을 고발했지만, 그는 부인했다.
E!는 일부 배우들의 레드카펫 보이콧 움직임이 거론되던 때에도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며 결국 시크레스트를 진행자로 밀어붙였다.
현장에서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시크레스트가 마이크를 갖다 댄 터레이지 P.헨슨은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방식이 있다"며 그를 비꼬았다. 주요 부문 후보들은 시크레스트를 지나쳐가며 그를 외면했다.
시크레스트는 '미투' 관련 언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할리우드 매체들은 지난해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케이시 애플랙의 경우 성희롱 의혹을 받자 올해 시상자에서 배제된 반면 시크레스트는 끝까지 살아남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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