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철개혁에 야당·노조 강력반발…집권 2년차 마크롱 시험대
의회심의 건너뛰는 법률명령 추진…야당들 "민주주의 부정" 맹비난
마크롱, 지지율 떨어져 동력 크게 약화…노조들 '이번엔 안 당해' 전면전 예고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정부가 빚더미에 앉은 국철을 개혁하는데 또다시 '법률명령'이라는 우회로를 동원할 방침이어서 야당과 노동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노동 유연화를 작년에 이 방식으로 '신속처리'한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에도 의회를 건너 뛰어 민주주의를 훼손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주요 노조들도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 않겠다'면서 대대적인 총파업을 예고했다.
철도근로자들의 복지혜택 대폭 삭감을 골자로 한 국철 개혁은 집권 2년차를 맞은 마크롱 정부의 향후 성패를 가늠할 주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의회 심의 건너뛰는 '법률명령' 추진에 야당·노조 거센 반발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국영철도(SNCF) 개혁을 국가적 시급 사안으로 규정하고 이를 법률명령(Ordonnance)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이달 중순까지 노조들을 설득한 뒤 올여름 전까지 관련 법률 개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일반적인 법률 제정 절차가 아닌 법률명령을 택한 것은 의회 심의를 대폭 단축해 개혁안을 최대한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서다.
법률명령은 의회의 정규심의를 거치는 법률과 달리 대통령의 위임입법 형식으로 마련돼 공포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며, 의회의 사후승인을 거치면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지닌다.
상·하원의 심의가 크게 단축되는 장점이 있는 만큼 프랑스 정부는 과거 국가적 긴급상황이나 예외적인 경우에 한 해 이 절차를 동원했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노조의 근로조건 협상권을 약화시키고 기업의 해고권한을 강화한 개정 노동법 처리를 위해 작년에 이 법률명령을 도입했다.
프랑스 야당들은 정부가 국철개혁을 또다시 법률명령으로 추진하기로 하자 "의회를 건너뛰려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제 1야당인 공화당(중도우파)의 크리스티앙 자콥 하원 원내대표는 "법률명령 추진은 대통령이 국민과 그 대표자들을 무시하고 (민의에 의한 정치가 아닌) 관료정치(테크노크라시)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어떤 반대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야당에 대한 완전한 무시이자 집권당에게도 수치"라고 주장했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중도좌파) 원내대표도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 맹비난했다. 우익정당 국민전선과 좌익정당 프랑스앵수미즈 등 비주류 정당들도 '정부가 노조와 야당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면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법률명령은 샤를 드골 대통령 집권 때인 1960년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인 알제리의 질서유지령과 1996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때 사회복지개혁 추진 당시 발동된 적이 있다.
따라서 현 정부가 개정 노동법을 법률명령으로 발효한 데 이어 몇 달 만에 또다시 이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사학자 크리스티앙 델포르트는 르몽드 인터뷰에서 "법률명령은 긴급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장치로, 국정과제의 신속처리 또는 사회적 갈등의 위험이나 파업을 회피하게 하려고 도입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행정명령을 한 번만 쓰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정부가 이를 남용하면 민주주의의 기초인 의회의 반대토론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헌법 정신을 왜곡하고 선출직 의원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에서는 집권 중도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가 이미 마크롱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철도노조, 과거 사회복지개혁 좌초시킨 주역…지지율 추락 마크롱 '시험대'
국철 개혁은 프랑스의 전 정부들도 몇 번 건드렸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철도노조가 워낙에 막강한 데다 과거 정권에서는 노조들이 국민여론의 지지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임 1년 차 때 정부의 대대적인 사회복지 개편에 반대해 이를 무산시킨 강력한 조직이기도 하다. 이때 철도노동자에 더해 교사와 집배원 등이 파업에 가세하면서 저항이 거세졌고 결국 알랭 쥐페 당시 총리는 복지축소계획을 대폭 철회하며 양보했다.
2010년에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대대적인 연금개혁안을 내놓자 철도노조가 이에 강력 반발, 결국 정부안이 상당 부분 후퇴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부채가 500억 유로(67조원 상당)로 불어난 국철의 방만한 복지시스템의 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면서 다시 메스를 집어들었다.
필리프 총리는 "국철이 일은 더 못하는데 공공서비스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 국민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 빚더미가 전체 시스템을 집어삼킬 수 있다. 지난 20년간 SNCF의 부채가 200억 유로에서 500억 유로로 늘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우선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이 보장된 철도근로자들의 종신고용을 없애고, 신입사원들부터 연봉 자동승급 등 갖가지 혜택을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정부는 국철개혁 용역보고서가 지적한 내용 중 수익이 나지 않는 지방노선 폐지 방안은 개혁안에서 제외했다. 해당 지역 유권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면 노조와의 싸움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주요 노조들은 정부 방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3월 22일 공무원 파업에 맞춰서 함께 총파업 투쟁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일부 노조는 오는 12일부터 파업에 돌입기로 했다.
프랑스 노조들은 이번 싸움을 작년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무력하게 물러선 것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그동안 프랑스 노동·사회정책의 주요 축이었던 노조들은 현 정부 출범 뒤 법적 권한은 물론 대정부 투쟁의 동력과 지지기반도 크게 상실한 마당이라 이번 싸움에 명운을 거는 분위기다.
작년 정부의 노동법 개정에 원칙적으로 찬성했던 프랑스 제1 노동단체인 온건성향의 민주노동총동맹(CFDT) 역시 국철 개혁 추진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등 노동계 기류는 심상치 않다.
따라서 국철 개혁은 향후 마크롱 정부의 명운은 물론 프랑스 전체의 사회복지시스템 개편 흐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추락한 것도 국철개혁의 향방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마크롱은 국철은 물론 실업급여 개혁 등 노동시장 구조개편과 공무원 12만 명 감축, 중등교육과 대입제도 개편 등 굵직한 국정과제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취임 10개월 만에 국정 지지도가 40% 초반대로 주저앉아 현재 정치적 동력이 많지 않다.
따라서 마크롱으로서는 노조와 야당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에 따라 법률명령 추진이라는 '배수의 진'을 또다시 다시 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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