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이주열 2기' 한은, 산적한 난제 잘 풀기 바란다
(서울=연합뉴스) 청와대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차기 총재로 재임명했다. 한은 총재의 연임은 1974년 김성환 전 총재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고, 한은 역사를 통틀어서도 3번째라고 한다. 특히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의장을 맡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 총재 연임이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이유다. 이 총재 연임 배경에는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 국내 가계 빚 문제 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통화정책 전문가가 필요한 현재의 복잡한 상황이 깔려 있다. 여기에 한·중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 만기 및 규모 제한이 없는 한·캐나다 통화스와프 체결 등의 공로도 인정받은 것 같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중앙은행 수장은 대체로 장수하는 편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20년간 자리를 지켰고, 벤 버냉키 전 의장도 8년간 재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던 재닛 앨런 전 의장이 39년 만에 처음으로 단임 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2002년부터 16년째 총재직을 유지하고 있고, 구로다 히로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의 연임 안도 최근 국회에 제출됐다.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국제결제은행(BIS) 회의에 두 달에 한 번꼴, G20 중앙은행 총재회의에는 연간 서너 차례 참석해 연간 10회 이상 국제회의에서 만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얼굴을 보며 의견을 나누다 보니 글로벌 통화정책의 흐름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다. 물가와 금융안정이 통화정책의 최대 목표지만, 중앙은행 수장은 통화정책을 수립할 때 글로벌 통화정책의 흐름과 대외적 변수를 잘 반영해야 한다.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들이 장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총재의 연임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의미도 있다.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겸임한 1998년 이후 한은 총재가 중간에 그만둔 적은 한 번도 없다. 정권이 바뀌어도 한은 총재의 4년 임기는 보장됐다. 그러나 이념이 다른 전 정권에서 임명된 총재가 이번처럼 재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이 총재는 연임 결정 발표 후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그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통화정책은 시장의 다양한 신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요인과 유지해야 할 요인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엇갈리는 신호 속에서 최적의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게 이 총재의 역할이다.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정치논리에 굴하지 말고 중립적 위치에서 통화정책을 끌고 가야 한다.
당장 이 총재 앞에는 난제들이 쌓여 있다. 미 연준은 이달 20∼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정책금리를 연 1.25∼1.50%에서 1.50∼1.75%로 0.25%포인트 올릴 것이 유력하다. 그러면 상단 금리가 한은 기준금리(1.50%)보다 높아져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현실화한다.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해외자본의 유출 가능성이 커지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심화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여건은 간단하지 않다. 소비 부진으로 경기 회복세가 아직 견고하지 않은 데다 미국의 통상압박, GM 군산공장 철수 등도 발목을 잡고 있다. 1천450조 원으로 불어난 가계부채 대응도 어렵다.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된다고 바로 따라 올리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총재가 통화신용 정책 전문가로서 난제를 잘 풀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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