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소방기준 완화하면 30년 아파트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할까
전문가 "가능성 높아졌지만 쉽지 않아"…주민 "달라지는 것 없다" 반발
5일 긴급 시행에 일부 단지 "소송하겠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김연정 기자 = 정부가 강화되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5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가운데 아파트의 주차공간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의 단지에 대해서는 재건축 가능성을 높여주기로 하면서 30년 이상된 단지들이 안전진단을 통과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안전진단 평가에서 주거환경분야의 항목은 세부적으로 9개로 나뉘는데, 정부는 이 중 '세대당 주차대수'와 '소방활동의 용이성'을 합한 점수 비중을 현행 37.5%에서 50%까지 높여줄 예정이다
이 때 세대당 주차대수 등급 평가 기준도 완화해 최하 등급 기준을 '현행 규정의 40% 미만'에서 '60% 미만'으로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주택건설기준 상 법정 주차대수는 전용면적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데 가구당 통상 1∼1.2대 정도를 적용받는다.
따라서 해당 아파트 단지의 법정 주차대수가 가구당 1대였다면 종전에는 실제 주차대수가 0.4대 이하면 최하등급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0.6대 이하면 최하등급이 나온다.
소방활동의 용이성이란 화재 시 소방차가 진입해 주차가 가능하도록 도로 폭이 6m가 돼야 하는데 아예 소방차가 진입조차 못할 정도면 최하등급, 도로 폭이 6m는 안되지만 소방차가 들어갈 수는 있는 정도면 그 다음으로 낮은 등급을 받는다.
주거환경 평가에서 이 두 가지 항목만 최하 등급을 받아도 주거환경평가 항목의 절반을 차지해 안전진단 통과에 유리해진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다른 구조안전 등에서 D등급 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주거환경분야 평가에서 가중치를 곱하기 전 점수가 '20점' 미만이면 재건축을 허용할 계획이다.
안전진단 강화에 반대하고 있는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의 경우 가구당 평균 주차 가능대수가 0.45대 1로 퇴근 시간 이후 2중, 3중의 주차가 이뤄져 소방도로 확보가 어렵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1980년대 후반에 건설된 아파트의 경우 주차대수가 현행 기준의 60% 이하인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항목이 최하점을 받더라도 재건축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한국시설안전공단 이석호 부장은 "주거환경 평가 항목만 해도 두 가지 외에 사생활침해, 도시미관, 일조 환경, 침수피해 가능성, 에너지 효율성 등 9개로 나뉘어 있어서 재건축 가능 여부는 평가를 해봐야 알 수 있다"며 "기준 변경으로 주차나 소방시설이 열악한 곳은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다소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얼마나 혜택을 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다른 민간 안전진단 업체 관계자도 "안전진단 평가 항목이 구조안전의 가중치가 50%나 되기 때문에 주거환경분야에서 '과락'이 나오지 않으면 사실상 안전진단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양천, 송파, 마포구 등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에 반발하고 있는 주민들 사이에도 "재건축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보다는 "성난 민심 달래기 수준"이라며 평가 절하하는 의견이 많다.
양천연대시민연합 최신구 운영위원은 "내진설계 안된 곳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 주차대수는 가중치를 늘려봤자 전체 안전진단에서 주거환경등급 비중이 높지 않아 안전진단 통과가 쉽지 않다"며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니까 무시할 수 없어서 내놓은 안에 불과하고, 실제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가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해봐야겠지만 주거환경평가에서 E등급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5일 시행을 앞두고 주민 의견을 일부 반영해 절충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동구재건축공동대책위원회 최재형 위원장은 "요즘 한 집에 차가 2대씩 있는데 가구당 1대인 과거 기준을 적용해 주차대수를 평가하는 건은 현실과 맞지 않다"며 "주차 문제만으로 (안전진단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진단 추진 단지들은 특히 행정예고가 끝나자마자 5일에 '기습 시행'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송파구 잠실 아시아선수촌, 강동구 명일동 신동아 등 연초부터 안전진단을 추진해온 단지들은 최근 구청과 함께 긴급 공고문을 내고 안전진단 업체 선정에 들어가는 등 막판 속도전을 벌여온 터라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일부 단지는 6일부터 12일까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마친다는 계획이었는데 정부가 시행을 서두르면서 날벼락을 맞게 된 셈이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주민은 "정부에 제출된 의견만 수천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아는데 지난 2일 행정예고를 마치고 사흘 만에 시행을 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라며 "제대로 의견수렴이 된 것인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강동구재건축공동대책위원회 최재형 위원장은 "삼익그린2차 아파트 등 일부는 용역계약비를 지불하려고 2억5천만원이 넘는 돈도 모아놓은 상태인데 행정예고를 20일에서 10일로 당긴 것도 모자라 이미 현장 실사를 통해 예비안전진단을 끝낸 곳까지 강화되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목동 등 주민들은 앞으로도 다른 지역과 연합 항의집회를 벌이는 등 비강남권 연대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안전진단 강화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대상 단지에서 일부 실망 매물도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주차장 문제는 어디나 심각하지만 이것으로 안전진단 통과가 될 지 의문"이라며 "아시아선수촌은 지난달 예비안전진단 통과된 후 가격이 1억∼2억원 이상 올랐는데 안전진단 통과가 어렵다면 매물이 늘고 가격 조정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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