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철강관세, 대공황 재현 우려…전문가 "단순 비교는 비약"
대공황 때도 무차별 관세로 불황 악화…"철강 분야 보호무역 촉발은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에 대해 무차별 '관세 폭탄'을 매기기로 하면서 과거 1920∼1930년대 전세계를 휩쓸었던 대공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공황 때도 미국발 고울 관세 조치가 전세계에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촉발했고, 결국 각국은 심각한 불황을 오랫동안 겪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지난 2일(현지시간) CNBC 방송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제품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려고 할 것"이라며 "마치 대공황 당시에 발생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가 대공황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들이 언급한 대공황 때 사례는 1930년 미국이 제정한 '스무트-홀리법'으로 인한 파장이다.
이 법은 관세율을 미국 사상 최고로 인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1929년 10월 뉴욕 증시 대폭락으로 불황이 시작되고 내수기반이 무너지자 수입 제한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상무장관 출신으로 1929년 취임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처럼 '경제를 아는 대통령'이라는 자신감 속에 이 법을 발동했다.
애초 농산물 관세 인상이 목적이었으나 산업계의 요구가 더해지면서 수입품 2만 품목 이상에 무차별적으로 관세가 붙었다. 평균 관세율은 최대 60% 가까이 높아졌다.
이에 영국, 프랑스 등 전 세계 주요 나라들도 잇따라 관세 인상 경쟁에 나섰다.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심각해졌고 대공황은 극도의 불황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1929∼1932년간 국제무역은 63%나 감소했고 각국 국내총생산(GDP)도 크게 줄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 관세 조치의 경우 만만하게 볼 사안은 아니지만, 과거 대공황과 직접 연관 지어 비교하는 것은 아직은 비약"이라며 "대공황 때는 거의 전 품목에 무차별 관세가 부과됐지만, 지금은 철강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다만, 지금 같은 분위기가 농산물, 제조업 등 다른 분야로 확산하면 상황이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면서 "세계 각국이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로 치닫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대공황처럼 세계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은 비교적 낮지만 적어도 철강 분야에서는 심각한 보호무역주의가 촉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제현정 박사는 "미국 시장 수출이 막히면 결국 그 물량이 다른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다른 나라도 비슷한 관세 조처를 하게 된다면 철강 산업은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에 휩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 추세에 대응하려면 우리나라 민관이 어느 때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기업은 시장 진입 장벽이 높거나 기술 격차가 있는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며 "통화와 재정 등 정책당국도 합심해 적극적으로 상황 개선 노력을 벌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coo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