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심리학자·정신과의사 27명의 경고…"트럼프는 위험한 사람"
예일콘퍼런스 토대로 한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 국내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미국 정신의학회 윤리강령에는 이른바 '골드워터'라는 규칙이 있다. 정신과 의사가 대면 검사와 허가 없이는, 특정 공인의 정신 건강에 전문적 의견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4월 20일 예일대에 모인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의사와 심리학자 27명은 지금이 '골드워터'를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이 직업윤리를 어기고 경고음을 발산하게 한 위급 상황은 무엇일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남자가 심각한 불안정성과 거짓으로 똘똘 뭉친 자라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역사심리학자 로버트 제이 리프턴)
신간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푸른숲 펴냄)는 이들 전문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평가하고 진단한 책이다. 예일 회의를 주도했던 한국계 미국인 밴디 리 예일대 의과대학원 임상조교수가 원고를 정리해 펴냈다.
이들 전문가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검사하거나 진료한 경험은 없다. 대신 1980년대부터 이미 유명했던 그가 등장한 수백 시간 길이의 동영상, 수천 건의 인터뷰, 수만 건의 트윗 등 방대한 자료를 심층 분석했다.
책은 트럼프 상태를 설명하는 1부 '트럼프 현상', 트럼프 심리 분석을 놓고 전문가들이 겪는 딜레마를 소개한 '트럼프 딜레마', 트럼프가 지금껏 사회에 미쳐온 영향과 앞으로 초래할 수 있는 영향을 짚은 '트럼프 효과' 등 3개 장으로 나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사납고 공격적인 장광설, 음모론적 망상, 사실 회피, 폭력에 대한 호감 등의 성향을 공통으로 추출해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한 우리에게는 임상심리학자 마이클 탠지의 분석이 특히 흥미롭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을 비롯해 독재자들을 치켜세우는 모습 뒤에는 본능적으로 잔인성에 끌리는 성향이 숨겨져 있다. 지난해 3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도청을 주장하는 트윗을 올린 일은 섬뜩하다. "자신이 도청당한다는 의심은 편집증적 망상이 표출되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양상이다." 탠지는 이 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과대망상과 편집증적 망상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증거를 나열한다.
이러한 장애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발사 코드의 통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가 그 코드를 일단 작동부터 시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물론 아직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변덕스러운 행동을 억제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한 저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우리가 전문가로서 해온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렇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중략) 트럼프처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에게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린 대통령직이라는 권력을 맡겨서는 안 된다."
밴디 리는 이 책의 요점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문가에게는 경고의 의무가 있다. 단순히 경보를 울리는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중요하며 책도 그러한 행동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미국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이 남긴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선의 수호자"라는 말을 되새기게 되는 책이다.
정지인·이은진 옮김. 572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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