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상폐 공개매수가에 주가만 고려…주주이익 침해 우려"
기업지배구조원 "2010년 이후 24개사, 평균 28% 할증"
"대주주-일반주주 이해상충 시 기관투자자 역할 중요"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자진 상장폐지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서는 기업들은 공개매수가 산정 기준으로 최근 주가만을 제시해 대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에 이해 상충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상장사들이 공고 이전 주가 대비 평균 28%가량의 프리미엄을 적용해 공개매수가를 책정하고는 있으나 시장가격에만 의존한 산정방식은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는 장기 투자자들의 주주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자진상장폐지 목적의 주식공개매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진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총 24개 코스피·코스닥 시장 상장사가 모두 34건의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이 가운데 18개사가 비상장사로 전환을 완료했다. 4개사는 주주들의 참여율 저조로 목표지분에 미달해 상장폐지가 불발됐고 나머지 2개사는 작년에 공개매수를 실시해 상장폐지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들 24개사는 공개매수 가격 산정 시 공고일 이전 1개월간 평균주가를 기준으로 최저 8.87%에서 최고 41.63%의 프리미엄을 붙였다.
평균 할증률은 27.64%로 집계됐다.
24개사 가운데 공개매수가 산정 근거로 최근 주가 외에 수익·자산가치 등 적정 기업가치 평가를 언급한 사례는 없었다.
상장폐지가 불발된 4개사의 경우 이처럼 시장가격에만 의존한 가격 산정방식이 문제가 됐다.
이들 4개사의 최초 공개매수 가격은 공고 한 달 전 평균주가 대비 20.40∼26.36% 높은 수준으로 평균 할증률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주가가 기업의 미래 성장성 등 실질 가치보다 저평가됐다고 본 투자자들은 이에 반발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았다.
한국타이어 계열의 차량 배터리 제조업체 아트라스BX[023890]의 경우 2016년 자진 상장폐지 목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사측이 자사주 매입으로 주당 가치가 올라갔음에도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고 반발해 자진 상장폐지에 요건(회사와 최대주주 합산 95% 이상 지분 확보)을 충족하지 못했다.
보고서는 이처럼 공개매수 가격을 놓고 회사와 일반 투자자 사이에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기금 등 기관 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소액주주들이 상장폐지를 막기에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가 상장폐지를 저지하거나 공개매수 가격을 올린 사례로는 2012년 한라공조(현 한온시스템[018880])와 2007년 한국전기초자 등이 있다.
한라공조는 공개매수 가격이 기업가치에 못 미친다고 본 국민연금의 불참으로 상장폐지가 불발됐고 한국전기초자는 '장하성펀드'로 불린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의 반대로 한차례 공매개수에 실패했다가 2010년 매수가를 올려 상장폐지를 완료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송은해 선임연구원은 "공개매수 가격과 시점을 결정할 권한은 기업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대주주와 경영진에게 있다.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시장가격에 의존한 공개매수가 산정방식은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송 연구원은 "특히 저평가 종목에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나 성장 잠재력을 높게 보는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장폐지로 주주 이익을 훼손당할 여지가 있다"며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공개매수가 산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표] 공개매수가격 산정 시 공고 1개월 전 평균주가 대비 할증률 현황
┌─────────┬────────────┬──────────────┐
│ 할증률 │ 최초 공개매수 │ 후속 공개매수 │
│ ├─────┬──────┼─────┬────────┤
│ │ 빈도수 │평균 할증률 │ 빈도수 │ 평균 할증률 │
├─────────┼─────┼──────┼─────┼────────┤
│ 30% 이상 │ 6│ 34.87%│ 0│ -│
├─────────┼─────┼──────┼─────┼────────┤
│20% 이상 30% 미만 │14│ 24.83%│ 2│ 24.70%│
├─────────┼─────┼──────┼─────┼────────┤
│10% 이상 20% 미만 │ 2│ 13.36%│ 1│ 18.82%│
├─────────┼─────┼──────┼─────┼────────┤
│ 0% 이상 10% 미만 │ 1│ 8.89%│ 5│ 2.54%│
├─────────┼─────┼──────┼─────┼────────┤
│ 0% 미만(할인) │ 0│ - │ 1│ -10.90%│
├─────────┼─────┼──────┼─────┼────────┤
│계│24│ 27.64%│ 9│ 7.78%│
└─────────┴─────┴──────┴─────┴────────┘
※후속 공개매수의 경우 할증률을 별도로 공시하지 않은 1개사는 계산에서 제외.
(자료제공:한국기업지배구조원)
inishmor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