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총선 사흘 앞으로…결과 예측불허에 시나리오 난무
"선거 다음 날부터 '짝짓기' 본격화"…우파로 정권교체?·좌우 대연정?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사흘 앞으로 다가온 이탈리아 총선은 작년 10월 통과된 새로운 선거법으로 실시되는 첫 선거인데다 유권자의 3분의 1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돼 그 어느 때보다 결과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탈리아는 오는 4일 상원(315명), 하원(630명) 의원을 뽑는 총선에 일제히 돌입한다.
발의자인 집권 민주당(PD)의 하원 원내총무인 에토레 로사토의 이름을 딴 새 선거법 '로사텔룸'은 전체 의원의 36%는 한 선거구에서 최다득표자를 당선시키는 소선거구제로 뽑고, 나머지 64%는 정당별 득표율로 할당하는 비례대표제로 채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선거를 치르기 전에 각 정당끼리의 연합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한편 군소 정당 난립을 막기 위해 정당끼리 연합한 세력의 경우 전국 득표율 10%, 연합 없이 단독으로 선거에 임하는 정당은 전국 득표율 3%를 확보해야 원내 진출을 허용한다.
과거의 선거법은 정치 안정을 담보할 목적으로 득표율 40%를 넘기는 정당에 하원 과반 의석을 보장했으나, 새로운 선거법 아래선 다른 정당과의 연대가 없으면 과반 의석 확보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탈리아 정계는 단독 정부를 꾸리려면 득표율이 40∼45%에 달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이에 가장 근접한 정당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구심점으로 한 우파연합이다.
총선 전 공표 가능한 마지막 여론조사인 지난 16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전진이탈리아(FI), 마테오 살비니가 전면에 나선 극우정당 동맹당, 신파시즘에 뿌리를 둔 정당 이탈리아형제당(FDI) 등이 손을 잡은 우파연합은 합계 지지율 37% 안팎을 달리고 있어, 이번 총선에서 최다 의석 확보가 유력하다.
우파정당들이 광범위하게 퍼진 반(反)난민 정서를 타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다 남부를 중심으로 한 소선거구제 선거방식에서 당선자를 대거 배출할 가능성도 높아 선거 후 다른 정당들과의 추가적인 연대 없이 우파만으로 정부를 꾸리며 정권 교체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존재한다.
우파연합 구성원들은 총선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하는 정당에서 총리를 배출하기로 합의했다. 여론조사 결과 FI가 16∼18%의 지지율로 동맹당에 3∼4%포인트 지지율이 앞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여파로 2019년까지 피선거권이 제한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오른팔인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을 총리 후보로 밀고 있다.
우파연합의 득표율이 단독 정부를 꾸릴 만큼 높게 나오지 않을 경우 이탈리아 정계는 당장 선거 다음 날부터 정부 구성을 위한 새로운 '짝짓기' 시도로 분주해질 전망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SWG의 마우리치오 페사토 대표는 "3월5일에는 상황이 완전히 급변할 것이다. 선거 다음날부터는 기존 연대가 의미가 없으며 정당들 간 관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 선거 이후부터 사실상의 본게임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FI와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이끄는 집권 민주당이 손을 잡고 독일식 좌우 대연정을 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 때 40%를 웃도는 기록적인 지지율을 기록한 민주당은 상원 대폭 축소를 노리고 렌치 전 총리가 밀어붙인 국민투표가 2016년 12월 부결된 이래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중도 좌파의 분열 속에 23%대의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FI는 유럽연합(EU)과 감세 등 핵심 정책에 있어서 과격한 동맹당과 큰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동맹당, FDI와의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FI와 민주당의 결합을 점치는 시각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FI와 민주당은 현재 단일 정당 가운데 지지율 선두를 구가 중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는데다, 동맹당, 오성운동 등과는 달리 EU에 친화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두 정당은 2013년 총선 이후에도 잠시 손을 잡은 전례도 있다. 둘의 연정이 성사될 경우 온건한 성품과 능력을 겸비해 진영과 무관하게 적이 거의 없는 파올로 젠틸로니 현 총리 혹은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이 총리를 맡아 내각이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계의 시각이다.
그래도 정부 구성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최종 결정권자 역할을 하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정치색이 옅은 전문 관료를 총리로 지명하고, 각 정당들로 하여금 정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초당적인 정부를 구성하게끔 이끄는 방안도 가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지지율 28%선을 넘나들고 있는 오성운동이 단일 정당으로는 최다 득표가 확실한 자신들을 중심으로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좌와 우로 나눠진 기성정치 체계를 부정하는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은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대는 절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최근 들어 정책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방침을 선회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 구성이 교착 상태에 빠질 경우 마타렐라 대통령이 최다 득표 정당인 오성운동에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주고, 오성운동이 난민 정책 등에서 톤이 비슷한 극우 동맹당과 연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다.
정부 구성이 최종적으로 불발되고, 새로운 총선이 소집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젠틸로니 총리가 이끄는 현 내각이 임시로 정부를 이끌 공산이 크다.
하지만,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체제를 바꾼 1946년 이래 무려 64개의 정부가 명멸한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재선거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총선을 다시 치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다.
한편, EU를 적대시하는 극우·포퓰리즘의 득세를 경계하고 있는 EU와 주변국 등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이탈리아의 정부 구성이 어려워지며 정치 불안이 커질 것이라는 염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22일 이탈리아의 총선에서 과반 득표를 하는 진영이 나오지 않아 정부를 구성할 수 없게 되면 금융 시장에 심각한 충격이 예상된다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 정국의 키를 쥐고 있는 마타렐라 대통령은 "우리는 정치적 불안정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을 찾는 데 있어 전문적 기술을 갖고 있다"며 큰 정국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작년 4월 극우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당수와 중도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맞붙은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요동쳤던 유럽 금융 시장도 현재까지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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