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에 관대한 메르켈, '도심운행금지 가능' 판결로 변화할까(종합)
일단 판결 의미 축소…내각, 디젤차 운행금지보다 개조에 초점
낡은 디젤차에 파란 배지 부착하는 방안 논의 예정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디젤차에 다소 관대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디젤차의 도심 운행금지가 가능하다는 법원 판결로 향후 입장 변화를 보일 지 주목된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슈투트가르트와 뒤셀도르프에서 노후 디젤차의 도심 운행금지가 가능하다는 연방 행정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뒤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모든 운전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정부는 지방자치단체들과 향후 조치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이 일부 도시에 내려졌다는 것으로, 애써 의미를 축소한 셈이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그동안 대기오염의 주요 주범 중 하나로 꼽혀온 디젤차의 퇴장과 전기차 시대로의 급속한 전환에 대해 보수적이었다.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2015년 터진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 선거 쟁점화되자 "디젤엔진을 악당 취급해선 안 된다"면서 "우리는 환경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디젤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한, 2020년까지 전기차를 100만대 보급하겠다는 기존 정책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 및 프랑스 정부가 2040년 내연기관 엔진을 금지하겠다는 공언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메르켈 총리의 이 같은 반응은 디젤차에 강점을 가진 독일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고, 디젤차를 소유한 유권자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도 "각 도시마다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내각의 장관들도 디젤차의 운행을 금지할 경우 디젤차 소유주들의 반발을 감안해 디젤차 개량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 중인 슈투트가르트가 지난해 노후 디젤차의 도심 진입 금지 정책을 도입하려다 뒤집은 것도 시민 반발에 따른 것이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 소속의 크리스티안 슈미트 연방교통부 장관은 공영방송 ARD에 출연해 지자체들이 디젤차의 운행금지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슈미트 장관은 전기차 확대와 디젤엔진이 개선 등의 조치가 대기질 개선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민주당 소속의 바르바라 헨드릭스 연방환경부 장관은 판결 직후 자동차 업체들이 디젤차의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개량하는 비용을 부담할 책임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공영방송 ZDF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목표는 디젤차의 운행금지를 피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일단 독일 정부는 낡은 디젤차에 파란배지를 부착해 특정 도심 구간 진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나, 법원의 이번 판결로 대기오염이 심각한 도시에서도 노후 디젤차의 운행금지가 사실상 가능해진 만큼, 정치권에 상당한 압박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좌파당 등 진보진영에서 디젤차의 조기 퇴출 정책을 줄기차게 요구할 경우, 메르켈 총리의 태도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28일 사설에서 "독일은 지난 몇 년 간 원자력발전을 중단하고 수천개의 풍력 발전소와 태양력 발전소를 세웠다"면서 "지금의 환경 분야의 초점은 자동차 산업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