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 중 6명 배출…충북 독립운동 산실

입력 2018-03-01 08:12
민족대표 33인 중 6명 배출…충북 독립운동 산실

"지역 세에 비해 애국지사 많이 배출…충절의 고장"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1910년대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속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었다.



1918년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윌슨 미국 대통령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하자 우리의 독립 열망은 더욱 커졌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아래에서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종교계가 주축이 된 민족대표들은 고종의 장례일을 이틀 앞두고 독립 선언을 하기로 뜻을 모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서울 종로 음식점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다.

이는 3·1 운동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이 독립 선언서를 작성해 서명한 사람들이 손병희 등 천도교 측 15명, 이승훈·길선주 등 기독교 측 16명, 한용운 등 불교 측 2명으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이다.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6명이 충북 출신이었다.

충북은 3·1 운동을 이끌었던 민족대표를 다수 배출했고, 신채호·한봉수 90여명 애국지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애국지사를 많이 배출한 데 대한 자긍심이 높아야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사실이 점차 잊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청주시 상당구 삼일공원에는 손병희, 신홍식, 권동진, 권병덕, 신석구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손병희 선생은 운동자금을 지원하고 시위 계획을 총괄 지휘했다. 권동진 선생은 만세시위의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훗날 친일 행적이 드러난 정춘수의 동상은 1996년 시민단체에 의해 철거됐다. 청주시가 2009년 삼일공원을 재정비하며 정춘수 자리에 횃불 조형물을 만들었다.

3·1 운동은 충북 곳곳에서 들불같이 번졌다.

3월 중순부터 청주시 미원면, 강내면, 부용면, 석교동 시장 등 곳곳에서 만세시위·봉화 시위가 이어졌다.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충북 지역 독립유공자는 504명이다.

장기영 광복회 충북지부 사무국장은 "충북은 도세에 비해 애국지사를 많이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이라면서 "삼일절을 맞아 우리 지역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을 재조명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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