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붙이기'로 생존하는 도시…이민자는 새로운 가지 역할"
네덜란드 작가 파레틴 오렌리, 용산 P21서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69년 터키 동부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파레틴 오렌리가 처음 대면한 도시는 서부의 유서 깊은 이즈미르였다.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거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터를 잡은 것이 20여 년 전이었다. 그는 이후 암스테르담뿐 아니라 뉴욕과 서울, 도쿄 등 여러 대도시를 오가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8일 서울 용산 이태원의 전시공간인 P21에서 개막한 오렌리 개인전은 도시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생명체라는 작가의 철학을 보여주는 자리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도시는 모든 정보와 지식을 차지한, 정부보다도 더 힘이 센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영향권을 계속 넓혀 나가고 새로운 건물을 쌓아 올리는 도시에서 나무의 모습을 발견한다. 인간의 삶과 자연이 도시와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주목한 개념이 식물의 '접붙이기'다.
"기존의 나무가 좋은 과일을 생산해내기 어려우면 새로운 가지를 그 나무에 덧대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여온 것이 유럽의 도시들이라고 생각해요."
전시장 벽면 하나를 통째로 점령한 신작 '지하 거대도시'는 도시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섬세하게 시각화한 드로잉이다. 나무의 뿌리처럼 보이는 곳에는 도쿄, 암스테르담 등지에서 관찰한 도시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이 작품 오른쪽에는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 아래 방사형의 도시가 뻗어 있는 드로잉이 걸려 있다. 두 작품과 마주한 조명 작품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암스테르담으로 옮겨간 이후 세계 곳곳을 떠돌며 살아온 작가는 '접붙이기'로 도시의 역동성을 살리는 새로운 가지 중 하나가 이민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유럽에서 격화하는 반(反) 이민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바라봤다.
"북유럽만 해도 경제위기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는데 언론에서 공포를 조장하다 보니 사람들 심리가 보수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어요. '이민자들이 우리 돈을 훔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하죠. 유럽에서 이민 문제가 크게 부각하고 있는데 사실 이민자 수는 터키 등에 비하면 아주 적어요.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죠."
이웃한 2개 공간을 사용하는 P21의 다른 전시장에서는 '접붙이기' 개념으로 인간의 성형수술을 바라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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