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성범죄 가해자 징계 '미적미적'…'미투' 번지나
강남 대형종합병원, 7개월 끌다 레지던트 계약만료 전날 '해직'
'전공의 성추행' 세브란스 교수는 반년째 '징계 미정'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성추행, 성폭행 등을 폭로하는 '미투'(Me Too)가 연일 확산하는 가운데 대형병원들은 원내 불미스러운 사건을 알고도 징계를 차일피일 미뤘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병원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오히려 의료계 미투를 확산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어 관심이 쏠린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원내 성폭행 사건이 폭로된 강남의 한 대형병원은 전날 징계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로 지목된 의사를 해직했지만 '뒤늦은' 징계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병원이 피해자로부터 이러한 사건을 전해 들은 건 지난해 7월로, 이미 7개월이나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병원은 그해 8월 경찰이 가해자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의사의 진료만 중지했을 뿐 해가 바뀔 때까지 머뭇대다 계약된 근로기간 종료일을 하루 앞두고서야 최종 징계를 내렸다. 이 의사의 병원 근무 기간은 이달 28일까지다.
이 병원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결과를 기다려왔다"며 "해당 의사의 계약종료를 앞두고 있어 징계권한이 사라지기 전에 위원회를 열어 해직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공의 성추행으로 비난을 샀던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의 징계 역시 해를 넘기도록 확정되지 않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는 산부인과 교수가 1년 차 전공의를 회식 자리 등에서 성추행했고, 같은 진료과 다른 교수는 이를 방조했다는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지난해 10월 이 병원 소속 전공의가 성추행 등을 폭로한 뒤 사직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병원에서는 해당 교수의 진료를 중지시키고 자체 조사위원회와 윤리위원회, 의과대 인사위원회 등을 열었으나 아직 본교인 연세대학교에서 인사위원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는 지도전문의이자 사립학교 교원이기 때문에 본교에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경비·청소노동자 등에 의해 지난달부터 연세대 본관이 점거돼 본교 업무가 모두 마비되는 바람에 징계가 늦어진 것일 뿐 병원 쪽에서는 최대한 빨리 매듭을 짓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는 신규 환자는 물론 기존에 진료를 봤던 환자들도 보지 않고 있다"며 "본교 차원의 징계가 확정되기 전 병원에서는 우선 모든 진료를 중지하도록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거나 사건을 알면서도 쉬쉬하려는 병원들의 행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성차별과 성희롱 등을 폭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대한전공의협의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 전공의 1천768명 중 28.7%가 성희롱을, 10.2%는 성추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전공의는 631명 중 48.5%가 성희롱을, 16.3%가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나 미투운동이 확산할 개연성이 높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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