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컬링 인기 비결? '함께'여서 아닐까요? "우리는 컬벤져스"

입력 2018-02-28 03:00
수정 2018-03-01 16:20
여자컬링 인기 비결? '함께'여서 아닐까요? "우리는 컬벤져스"

"10년 동안 '영미야' 들으며 특별하다고 생각 안 했는데…덕분에 팀이 떴네요"

"결승전 즐기고 싶었고, 스웨덴의 승리 쿨하게 인정하고 싶었다"

평소엔 강다니엘·유승호·삼성 라이온즈 좋아하는 평범한 20대



(대구=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은메달 그 후, 여자컬링 대표팀은 강다니엘, 유승호, 야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일반인으로 돌아왔다.

'팀 킴'의 김은정,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초희는 시간이 날 때는 TV를 보거나 손톱을 가꾸는 등 평소에는 평범한 20대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들이 다함께 뭉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한국 컬링 최초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고, 단숨에 컬링을 최고 인기 스포츠로 만들었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메시지가 1천 개 이상 쌓여 있고, 지나가는 곳마다 사진을 함께 찍어 달라는 요청이 넘치는 것은 올림픽 후 달라진 점이다.

대표팀은 '컬벤져스'처럼 각자 다른 개성이 뭉쳐 큰 힘을 내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 "영미야 뜰 줄 알았으면 선영아, 경애야, 초희야도 많이 부를걸"

27일 대구 인터불고 엑스코 호텔에서 경북체육회가 개최한 올림픽 성과 보고 및 축하 행사를 마치고 만난 여자컬링 대표팀은 "카카오톡에 메시지가 1천개 이상 오면 '999+'가 되더라고요"라며 달라진 인기에 놀라워했다.

인기 비결을 묻자 김경애는 "영미?"라며 친언니인 김영미에게 눈길을 줬다. 김영미는 대표팀의 주장(스킵) 김은정이 스위핑을 지시할 때 이름이 자주 불리는 바람에 이번 올림픽 기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됐다.

김영미는 "제가 약간 '비선 실세'처럼 돼 있더라. 저를 중심으로 뭉친 게 재밌고 생소해서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라며 웃었다.

대표팀의 김은정은 김영미의 고등학교 친구이고, 김경애는 김영미의 동생이며, 김선영은 김영미의 동생 친구다.

경기도 출신인 막내 김초희가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 이들은 경북 의성에서 같은 의성여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함께 컬링을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컬링 메달은 이런 인연에서 출발해 만들어졌다.

김선영은 "혈연·학연·지연의 좋은 예, '끝판왕'이라고 하더라"라고 거들었다.

김은정은 "사실 '영미야'는 제 거 아닌가요?"라며 영미라는 이름이 유행하는 데 자신의 기여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럴 줄 알았더라면 경기에서 '선영아'도 부르고, '경애야', '초희야'도 부르고 '감독님'도 부를 걸…. 제가 너무 몰라서 미안하다"며 다른 동료도 더 유명해질 기회를 놓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대표팀은 올림픽 기간에 컬링에만 집중하려고 휴대전화를 꺼 놓고 지내서 자신들이 이렇게 유명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은메달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서야 인기를 확인하게 됐다.

김은정은 "우리는 10년 동안 '영미야'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나도 못 했다"며 웃었다.

팀에서 김영미와 가장 스위핑을 많이 하는 멤버인 김선영은 유독 '영미'만 유명해진 데 대해 "섭섭하지 않다. 기대도 생각도 안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며 "어쨌든 영미 언니가 있어서 우리 팀 자체가 떴으니 좋다"며 활짝 웃었다.



◇ "우리도 누군가의 팬이랍니다"

오랜만에 휴대전화를 켜니 대표팀이 다 함께 응원하는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연락도 와 있었더라며 신기해했다.

김은정은 삼성의 김상수, 김경애는 이승엽, 김영미는 박해민, 김초희는 구자욱을 좋아한다며 함께 '직관'도 자주 갔다고 설명했다.

평소 카리스마 있는 멤버로 통하는 김경애는 올림픽 기간에 휴대전화를 끄고 살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이 "워너원(Wanna One)의 강다니엘을 못 보는 것"이었다며 숨겨왔던 팬심을 드러냈다.

김경애는 "저랑 다른 느낌을 가진 사람이어서 좋다. 저는 강하고 성질이 있는데, 그 사람은 항상 웃고 사람들을 잘 챙긴다. 자기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을 본받고 싶다. 힘들 때 강다니엘 영상을 보면 저도 같이 웃고 있더라"라고 신이 난 모습으로 말했다.

김초희는 유승호를, 김선영은 고경표 좋아한다는 '중대 발표'를 했다.

김선영이 TV 시청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인데, 김선영이 재밌는 프로그램을 발견하면 팀원들에게 말해줘서 다 함께 그 프로그램을 본다고 '팀 킴'은 설명했다.



◇ 결승전 패배…"쿨하게 인정하고 싶었어요"

대표팀은 지난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결승전에서 스웨덴에 3-8로 패했다. 마지막 10엔드를 앞두고 대표팀은 잠시 모여 이야기를 나누더니 스웨덴 팀에 승리를 축하한다는 악수를 청했다.

김은정은 "우리가 앞선 엔드에서 실수를 했었고, 7엔드에서 3점을 줬을 때 힘들겠다는 사실이 와 닿았다. 9엔드에는 약간 덤덤했다"며 그 순간을 돌아봤다.

전날 남자컬링 결승전에서 스웨덴이 미국에 '멋지게 패배'한 모습도 떠올랐다. 스웨덴의 스킵 니클라스 에딘은 '빙글' 도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마지막 샷을 했고, 미국에 승리를 축하한다는 악수를 했다.

김은정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경기를 부여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정말 올림픽을 즐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도 결승에만 가면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더 어렵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끗 차이인데 그 한 끗이 안 맞았다. 그래도 우리가 목표한 것 이상을 얻었다. 우리도 스웨덴 남자팀처럼 즐기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하지 않고 '쿨'하게 인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스웨덴 여자팀은 결승에서 너무 잘하더라.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악수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갈릭걸스? 우리가 직접 지은 별명은 '컬벤져스'"

대표팀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세계적인 팀으로 떠올랐다. 외신은 마늘로 유명한 의성에서 온 팀이 컬링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들에게 '갈릭 걸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김선영은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것도 신기한데 전 세계가 저희를 생각해주시니 새롭다. 그런데 우리는 갈릭걸스보다 '컬벤져스'가 좋다. 앞으로는 컬벤져스라 불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슈퍼히어로들이 나오는 영화 '어벤져스'를 컬링과 합친 말로 대표팀이 올림픽 기간에 재미삼아 직접 지은 별명이다.

각자 캐릭터도 있다. 김영미는 자신이 좋아하는 '캡틴 아메리카'를 따서 '캡틴 코리아'를 맡았다. 김초희는 "때때로 저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며 '헐크'를 자청했다.

김경애는 '토르'다. 주변에서 가끔 자신을 토르라고 부른다는 설명이다. 김선영은 '촐싹거리는 이미지' 덕분에 '스파이더맨'이 됐고, 김은정은 "제가 제일 약해서요"라며 '호크아이'를 담당하게 됐다고 밝혔다.

평소 좋아하는 캐릭터인 '아이언맨'을 맡은 김민정 감독은 "어벤져스와 우리의 느낌이 어울린다. 각자 특징이 있으면서 함께 뭉치면 힘이 된다. 우리가 '여자여자' 느낌도 아니고"라며 웃었다.



◇ "원하는 광고? '함께'하는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면"

대표팀은 광고계 최고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올림픽 후 여자컬링 대표팀은 각종 광고 섭외 요청을 받고 있다.

김은정은 "우리가 희망을 보여주는 역할도 한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미는 "광고를 찍는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이미지였으면 한다. 우리가 그런(도움을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저희도 우리의 이미지로 누군가를 돕거나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도움을 받았다'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김영미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는데, 지도자분들께서 저희를 안 다치게 하려고 노력해주셨다. 경상도 여자라서 그런지 표현을 못했는데 저희를 지켜주신 김민정 감독님께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자 김민정 감독은 '팀 킴'을 지도해온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장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면서 "광고는 '함께'를 나타낼 수 있다면 다 괜찮을 것 같다. 사회적으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이라고 덧붙였다.

선수들의 꿈이 있다면 '전설적인 팀'이 되는 것이다.

김초희는 "지금처럼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김영미는 "이승엽처럼, 정말 좋은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고 했고, 김선영은 "레전드 팀으로 남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경애는 "가장 높은 자리, 세계 정상에 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고, 김은정은 "우리나라 컬링에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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