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종주국 프랑스 보건장관의 도발…"와인도 술, 규제 늘려야"
뷔쟁 장관 "적절한 음주 관념 옛말…와인도 건강에 나쁘다"
와인업계 "마녀사냥" 반발…마크롱 "나도 매일 한두 잔 마셔, 규제강화 없을 것"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와인의 종주국 프랑스에서 와인이 건강에 좋으냐 나쁘냐는 해묵은 논쟁을 보건장관과 대통령이 재개했다.
와인 역시 다른 술처럼 건강에 나쁘니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보건 장관의 주장에 와인업계가 강력 반발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나도 매일 한두 잔씩 한다"면서 규제를 강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아녜스 뷔쟁 보건부 장관이었다. 의사 출신으로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하기로 유명한 뷔쟁 장관은 최근 공영 프랑스2 방송에 출연해 와인 역시 다른 술처럼 건강에 좋지 않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국민건강의 관점에서 와인을 마시든 맥주나 보드카, 위스키를 마시든 완전히 같다. 그런데 와인 업계는 와인은 다른 술과 다르다고 홍보한다"면서 이중적 태도라고 비난했다.
뷔쟁 장관은 "프랑스인들은 와인이 안전한 술이고, 다른 술에는 없는 이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만, 틀린 말이다. 과학적으로 와인은 다른 술과 같은 알코올일 뿐"이라면서 "적절한 음주라는 관념은 끝났다. 이제는 알코올이 건강에 나쁘다는 얘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와인 업계는 이에 즉각 반발했다.
와인생산업자들의 압력단체인 '뱅 에 소시에테'의 조엘 포르조 대표는 주간 렉스프레스 인터뷰에서 "장관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용인할 수 없다. 이는 와인 농가와 유통업자들에 대한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와인 업계 인사들과 유명 작가 베르나르 피보, 암 전문의 다비드 카야 등은 일간지 르피가로에 공동기고문을 내고 "프랑스 문화의 일부인 와인을 악의 근원으로 몰지 말라"면서 뷔쟁 장관의 발언은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뷔쟁 장관의 상관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해당 발언에 부정적인 의사를 내보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4일 농업박람회에 참석해 술 광고를 규제한 현재의 법규를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을 일축하며 "나도 매일 점심과 저녁에 와인을 마신다"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맥주나 다른 술을 너무 성급히 마시면 분명 건강을 해치지만, 와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면서 술 광고 규제를 강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정부 대변인도 BFM 방송에 출연해 "와인에 알코올이 있기는 하지만, 강하지 않다. 와인은 우리의 전통이고 문화이며 국가적 정체성이지, 적이 아니다"라고 대통령의 말을 거들었다.
반면에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좀 더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의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한 의원이 "이 정부가 와인 업계에 적대적인 정책을 추진할 건가"라고 묻자 "와인의 전통과 프랑스 농가를 존중하지만, 국민건강의 문제가 없는 척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하루 한두 잔의 와인은 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와인을 마시는 프랑스인들이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을 즐겨 먹는데도 심장병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는 '프렌치 패러독스'(프랑스인의 역설)라는 현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프랑스에서도 뷔쟁 장관처럼 '와인의 건강 위협론'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2016년 프랑스 회계감사원은 와인 업계의 이해관계 때문에 정부가 프랑스의 알코올로 인한 국민건강 문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15년 기준 프랑스의 와인 시장 규모는 283억 유로(37조4천억원 상당) 가량으로, 프랑스 와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30%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프랑스에서도 1인당 와인소비량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고 있다.
1965년 프랑스 성인의 1인당 연간 와인소비량은 160ℓ에 달했지만, 현재는 44ℓ 수준이다.
1980년 와인을 일상적으로 마신다는 응답은 51%였지만, 2016년 조사에서는 16%로 낮아졌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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