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포퓰리즘, 난민 반감 타고 이탈리아도 삼키나…유럽 긴장
내달 4일 상하원 의원 뽑는 총선…극우·포퓰리즘 정당 약진 예상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당과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 경제 규모 3위인 이탈리아 총선이 6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국제 사회의 시선이 점차 이탈리아 반도로 쏠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오는 4일 상원(총 315석)과 하원(총 630석) 의원을 뽑는 총선에 일제히 돌입한다.
최근 여론 조사 추이를 보면 어느 진영도 단독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출현할 것이라는 관측이 현재로서는 우세하다. 이에 따라 총선 후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특히,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통과, 작년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극우 세력의 약진을 경험한 유럽은 증폭되고 있는 반난민 감정과 오랜 경기 침체에 따른 높은 실업률 탓에 이탈리아에서 역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할 가능성을 바짝 경계하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2013년 이래 약70만 명의 아프리카·중동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몰려들며 난민으로 인한 사회·정치적인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고, 오랜 경기 침체로 경제가 활력을 잃으며 실업률이 유럽연합 평균보다 2%포인트 가량 높은 약 11%, 청년실업률은 약 35%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전진이탈리아(FI), 반(反)난민·반(反) EU를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극우 정당 동맹당, 이탈리아형제당(FDI)이 손을 잡은 우파연합이 지지율 37%안팎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어 최다 의석 확보가 유력시 된다.
우파연합 내에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스스로를 포퓰리즘 열풍에서 이탈리아를 지키는 온건한 친유럽주의자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으나,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 대표, 조르지아 멜로니 FDI 대표는 '이탈리아 우선'을 외치며 집권 시 유로존을 떠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탈리아가 난민들에 침략당했다"는 자극적인 구호 아래 집권 시 매년 불법 체류 난민 10만명씩을 본국으로 송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동맹당의 경우 2013년 총선 당시 4%에 그쳤던 지지율이 반난민 분위기를 타고 수직 상승, 13%까지 치솟았다. 살비니 대표는 지지율 16%를 넘나드는 FI보다 동맹당이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을 경우 자신이 우파연합의 총리가 될 것이라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단일 정당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정당은 좌와 우로 나눠진 기성 정치권을 부패 세력으로 싸잡아 비난하며 정직을 기치로 내걸고 2009년 창당한 오성운동으로, 지지율 28%선을 지키고 있다.
오성운동은 환경, 인권 등 일부 정책에서는 좌파보다 더 왼쪽으로 쏠려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강경한 난민 정책, 유로화에 회의적인 입장, 뚜렷한 대안 없이 기성 체제에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행보로 반체제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2013년 총선에서 25%를 득표하며, 창당 4년 만에 제1야당으로 올라서는 돌풍을 일으킨 오성운동은 5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는 세력을 더욱 키워 집권까지 넘볼 태세다.
오성운동은 지금까지는 다른 정치 세력과의 연대 배제 원칙을 고수했으나, 최근 이런 입장을 완화했다. 오성운동은 우파연합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할 경우 단일 정당으로서는 가장 많은 표 확보가 확실시되는 자신들을 중심으로 정책 연대를 통해 정부를 꾸린다는 구상이다.
극우·포퓰리즘 세력의 약진 속에 집권 민주당(PD)은 지지율이 사상 최하 수준인 23%선으로 빠지며 고전하고 있다.
민주당은 2016년 12월 렌치 총리가 정치 생명을 걸고 밀어붙인 상원 대폭 축소를 골자로 한 헌법개정 국민투표가 부결된 뒤 당 대표인 마테오 렌치 전 총리에 반기를 든 일부 인사들이 탈당해 새로운 정당으로 분열돼 나간 통에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EU의 가치를 강력히 옹호하는 정당인 플러스이탈리아 등과 손을 잡은 중도좌파 연합의 합계 지지율은 약 27%로 오성운동 단독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작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에 비해 1.4% 성장해 7년 만에 최고를 나타내는 등 이탈리아 경제가 오랜 경기 침체에서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대량 유입된 난민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반감에 가로막혀 좀처럼 반등 기회를 맞지 못해 총선에서 완패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탈리아 정계는 다만 FI와 동맹당이 EU, 유로화 등 핵심 정책에서 상당한 간극을 보이고 있는 만큼,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단독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시, FI가 동맹당의 연합을 깨고, 민주당과 손을 잡아 독일식 대연정을 꾸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 내각의 유럽담당 부처 차관을 맡고 있는 산드로 고치는 최근 민주당 선거 유세에서 "이번 총선에서는 유럽이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유럽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며 "사실상 유럽 친화적인 열린 사회와 반유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적 닫힌 사회 사이의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고치 차관의 말처럼 이탈리아에서 우파와 포퓰리즘 세력의 확장 현상이 뚜렷해질 경우 오는 4월8일 총선을 치르는 헝가리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헝가리 총선에서는 난민을 '독'이라고 부르며 EU의 난민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3연임이 유력시 되고 있다
작년 12월 우파 국민당이 나치 부역자들이 설립한 극우 자유당과 손을 잡고 연립 정부를 출범한 오스트리아에 이어 이탈리아를 거쳐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우향우' 현상이 하나의 확고한 흐름으로 자리잡게 될지 여부가 가려진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총선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체의 명운과도 관련을 맺고 있다는 분석이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