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맞은 '법의학 30년' 이윤성 교수 "억울한 죽음 없어야"

입력 2018-02-25 08:45
정년맞은 '법의학 30년' 이윤성 교수 "억울한 죽음 없어야"

28일 서울대 퇴임…"법의학자는 망자의 권리 지키는 게 소임"

"법의학 제도 발전 못이뤄 아쉬워…특정 상황에선 부검해야"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모든 사람은 억울하게 죽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이 단 한 건이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약 30년 동안 법의학 외길을 걸어온 이윤성(65)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의학의 중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달 말 정년 퇴임하며 교단을 떠난다.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의대 내 이 교수의 연구실은 법의학 관련 서적과 자료가 바닥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법의학자로서 '30년 내공'이 오롯이 배어있다.

197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 교수는 병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법의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법의학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학문인데도 가려는 사람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의학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수사기관이 의뢰한 시신을 부검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일이다. 실제로 그동안 이 교수가 부검한 시신만 약 1천구에 달한다고 한다.

그는 국방부 의문사 특별조사단 자문위원,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서울대 백남기사건특별조사위원장 등을 지내며 사회적 이슈가 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해왔다.

이 교수는 "한참 부검을 할 때는 시신 냄새를 안 맡으면 오히려 그리울 정도였다"면서 "시신을 놓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사실을 밝히는 게 나의 목표였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또 "일반 의사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을 한다면 법의학자는 망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을 한다"면서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말하는 게 최선이고, 진실은 사실을 바탕으로 밝혀지게 돼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30년 전과 비교해 그다지 변한 게 없는 우리나라 법의학 제도에 관해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범죄가 의심돼 수사 필요성이 있을 때만 검사의 지휘를 받아 부검이 가능한데, 이 경우 자칫 '억울한 죽음'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0여 년 전 알코올 중독 남성 사망 사건을 예로 들었다. 경찰은 병사로 보인다며 부검을 하는데 불평했지만, 부검 결과 장 파열 사실이 드러나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부검을 하다 보면 100에 99는 검찰이나 경찰이 생각한 결론과 같게 나오지만, 1은 다르게 나온다"면서 "알코올중독 남성을 부검하지 않았다면 죽음의 진실은 영원히 묻혀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부 선진국처럼 특정 조건에서는 부검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12세 이하 입양아나 2세 이하 영아 사망 때 부검을 반드시 해야 하고, 병원에 이송된 지 24시간 안에 사망하면 의료사고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해 무조건 부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범죄뿐 아니라 민사 소송에서도 부검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재해사망'이 특약으로 들어간 보험계약자가 사망하면 보험사는 '병사'를 주장하고 유족은 '재해사망'이라고 맞서는데 이때 부검으로 사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죽은 사람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현재의 제도가 30년 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교수는 강단을 떠나면 2013년부터 맡은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원장 역할에 더욱 충실히 할 작정이다.

그는 "연명의료 중단법이 시행됐지만,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면서 "이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p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