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센터, 개인모금으로 짓는다더니"…세금 2천억원 투입논란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시카고에 추진 중인 기념관 건립 사업이 주민 반발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시카고 시가 기념관 주변 인프라 재정비에만 2천억원에 달하는 주민 세금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졌다.
23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시카고 시 당국은 이날 도심 남부 미시간호변의 유서깊은 시민공원 '잭슨파크'에 건립될 '오바마 센터' 인근 도로 재정비에 약 1억7천500만 달러(약 2천억원)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건립사업의 주체인 오바마 재단은 앞서 시카고 시와 일리노이 주 교통 당국에 오바마 센터 인근 도로 확장 및 지하통로 신설, 주민들의 잭슨공원 접근로 일부 구간 폐쇄 등을 요청한 바 있다.
시카고 트리뷴은 오바마 센터가 공식적으로는 사적 기금 모금을 통해 건립되는 사실을 상기하며 "시 당국이 주민 부담금 추산치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시카고 시는 이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일리노이 주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을 포함, 가능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 교통당국은 비용에 대해 "오바마 센터와 잭슨파크를 '시카고 뮤지엄 캠퍼스'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기 위한 투자"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바마 센터 인근 도로 체제 변화가 지역 교통 흐름을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발표는 다음주 열릴 예정인 오바마 재단의 주민 공청회를 앞두고 나왔다.
오바마 재단은 미 국립사적지로 등재된 잭슨파크에 약 8만㎡ 규모의 복합 건물을 짓기 위한 조건변경 신청서를 지난 1월 시카고 도시계획위원회(CPC)에 제출했다.
CPC는 이를 검토 중이며, 오바마 측은 금년 상반기 중 승인을 얻고 연내 착공해 2021년 개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바마 재단은 기념관 건립 공사에 3억 달러(약 3천200억 원) 이상, 유지보수 비용 포함 총 5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시민감시단체 '잭슨파크 워치' 측은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오바마 측이 국립사적지에 대규모 개발을 추진하는 대신 잭슨파크에 인접한 슬럼화된 흑인 밀집지구 '워싱턴 파크'를 부지로 선택했더라면 가뜩이나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시카고 시와 일리노이 주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트리뷴은 오바마 센터 건립 구상이 실체화 하면서 지역주민들 사이에 인종간·계층간 갈등이 표면화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지 인근 건물 소유주들과 부유층은 개발 혜택을 볼 수 있는 반면 남부의 주류인 가난한 흑인들은 아이들이 뛰어놀던 최소의 공간마저 오바마 센터의 부대 시설 부지로 빼앗기고,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협마저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카고대학 인근 녹지를 오바마 센터 부대시설로 전환하는 계획에 반대했던 주민 브로윈 로다토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을 지키고 싶어서다. 이로 인해 흑인인 내가 '안티 블랙' 소리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개탄했다.
주민들은 연대 조직을 결성하고 개발 수익의 공정한 사회적 분배를 보장하는 '지역혜택협약'(CBA)을 요구하고 있으나 오바마는 서명을 거부, 원성을 듣고 있다.
트리뷴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기념관이 시카고 남부에 인종과 계층, 인종분리와 빈부격차, 권력과 특권 등에 관한 미묘하고 감정적인 논란을 이어지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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