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세기의 대결 자기토바-메드베데바 "우린 러시아에서 왔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은 나눠 가진 러시아 두 요정
국기 없는 시상식 묻는 말에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다들 잘 알 것"
(강릉=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세기의 맞대결을 펼친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알리나 자기토바와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이상 OAR·러시아)는 경기 후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임했다.
두 선수는 23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자기토바)과 은메달을 나눠 가진 뒤 뜨겁게 포옹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앉은 메드베데바는 늦게 들어온 자기토바에게 가운데 자리를 가리키며 담소를 나눴다.
불과 수 분 전까지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두 선수는 '러시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한데 뭉쳤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주로 '러시아의 첫 금메달'과 '러시아 국기 없는 시상대'에 관해 질문이 쏟아졌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국가적인 도핑 스캔들을 일으켜 평창올림픽에서 '러시아'라는 이름 대신 'OAR(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들)'라는 칭호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OAR는 평창올림픽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하다 자기토바가 폐막을 이틀 앞두고 첫 테이프를 끊었다.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는 24일 평창올림픽플라자에서 시상대에 오른다. 시상식에선 러시아 국기 대신 오륜기가 올라가고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울려 퍼진다.
메드베데바는 이와 관련한 질문에 "우리 앞에 놓인 상황에 관해 신경 쓰지 않는다"라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누군지 안다. 우리는 관중 앞에서 우리의 실력을 입증했다'라고 말했다.
16세의 어린 소녀 자기토바는 "관련 질문엔 답변하지 않겠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OAR는 올림픽 기간 막판까지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고, 많은 러시아인은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에 큰 희망을 걸었다.
경쟁을 넘어 압도적인 연기로 러시아에 첫 금메달을 선사하길 바랐다.
두 선수는 부담을 안고 은반 위에 서야 했다.
메드베데바는 "걱정과 긴장을 떨쳐내려고 노력했다"라며 "후회없이 올림픽 무대를 마치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경기를 펼쳤다. 생각보단 잘 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경기가 끝난 뒤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라"라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솟구쳤다. 아마도 오랫동안 성적에 관해 압박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내내 흥분된 목소리로 답변하던 메드베데바와 달리 자기토바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그는 금메달을 땄다는 기쁨보다 허무함이 밀려왔다고 했다.
자기토바는 "근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을 해왔다"라며 "부상 등 많은 일을 겪었는데, 일련의 시간이 흘러 올림픽 금메달을 따니 허무한 감정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에서 첫 번째 올림픽 맞대결을 펼친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는 다시 일어나 경쟁을 시작할 예정이다.
메드베데바는 "삶은 길다"라며 "곧바로 다음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토바는 "연기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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