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초유의 회장 선임 무산, 왜 일어났나

입력 2018-02-22 18:33
수정 2018-02-22 22:08
경총 초유의 회장 선임 무산, 왜 일어났나



박상희, 중소기업ㆍ정치인 출신 걸림돌 된 듯…"정권 코드 맞추기에 반발"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1970년 설립된 지 48년 만에 회장 선임 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재계에서는 사용자단체인 경총 회장에 여권 정치인이자 중소기업 출신 인사를 앉히려다가 반발에 부딪힌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경총은 22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제49회 정기총회를 열고 박병원 회장 후임을 뽑는 절차를 진행했으나 결국 차기 회장을 선임하지 못했다.

당초 중소기업중앙회장 출신의 박상희 대구 경총 회장이 추대돼 차기 회장으로 이날 전형위원회에서 선임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회장을 최종 결정하는 전형위원회 일부 위원들이 반대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전형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대기업 관계자이고 중소기업 출신은 1명 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등 큰 혼란이 빚어졌다.

경총의 정관에는 회장 선임에 대한 구체적 절차가 명기되지 않고, '총회를 통해 선임한다' 정도의 규정이 전부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관행상 회장단이 총회에 앞서 후보를 추대하고, 또 역시 관행상 전형위원회를 구성해 만장일치 형식으로 선임을 확정해왔다.

재계에 따르면 10명 안팎의 경총 회장단은 지난 19일 오찬 모임에서 박상희 대구 경총 회장을 차기 7대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병원 현 회장이 거듭 '사퇴' 의사를 밝혀 회장단이 적임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 대표 출신 박 회장이 추천됐고, 박 회장이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 자신도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이 후보로 논의됐으나 최종적으로 자신이 추대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이날 당일 구성된 전형위원회 위원들은 박상희 회장을 차기 경총 회장으로 인정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박 회장은 자신을 반대하는 주력한 인물로 전형위원회에 참여한 모 10대 그룹 고위급 임원을 지목했다.



이 임원은 19일 회장단 모임에서 박 회장이 추대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박 회장은 "19일 모임에 당사자도 참석했고, 내가 추천되고 내가 수락할 때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이제와서 반대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재계와 경총 안팎에서는 중소기업 출신 회장 후보자 선임을 대기업 회원사들이 황급히 막아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방경총을 포함해 현재 경총에 가입한 기업들은 모두 4천여개로, 이 중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한국경총(중앙 경총)만 따지면 회원사 400여개 중 다수가 대기업인데다,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받는 회비를 고려하면 대기업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박 회장이 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란 점도 걸림돌이 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총이 노사관계에서 경영계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에다, 정권에 코드를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덧붙여져 반발이 일었다는 분석이다.

대기업 회원사의 부정적 여론에, 이날 퇴임한 박병원 회장의 의중까지 어느 정도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관행에 따라 전형위원회 위원을 뽑아 구성하는 권한이 현직 회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박병원 전 회장이 선임한 위원은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김영태 SK 부회장, 박복규 전국택시연합회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 조용이 경기 경총 회장 등 6명이다, 박상희 회장이 불만을 터뜨린 대로 과반이 대기업 관계자다.

재계 관계자는 "경총이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고 중기 대표, 중기중앙회장 출신 회장 선임을 추진하다가 대기업 회원사들의 벽에 부딪힌 것 같다"며 "경총으로서는 회비와 회원 탈퇴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일부 초대기업 회원사들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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