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단일팀 산파' 파젤 IIHF 회장 "한국 경기력 매우 만족"
1994년부터 IIHF 이끈 파젤 회장, 연합뉴스와 단독 인터뷰
"첫 상대 스위스는 8골이나 넣을 필요 없었다. 너무 심했다"
(강릉=연합뉴스) 유지호 신창용 기자 = 르네 파젤(68) 국제아이스하키연명(IIHF) 회장은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치과의사로 1994년부터 회장직을 맡았다.
벌써 4번째 연임이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결성된 남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22일 강원도 강릉 라카이 샌드파인리조트에서 연합뉴스와 단독 인터뷰에 나선 파젤 회장은 그래서인지 단일팀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는 "단일팀의 첫 경기인 스위스전에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함께 관전하는 모습이 내게는 무척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파젤 회장이 실망한 것은 다른 대목이었다. 그는 스위스 태생이기는 하지만 올림픽 데뷔전에 나선 단일팀을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인 자국 대표팀에 눈을 흘겼다. 스위스는 단일팀을 8-0으로 대파했다.
그는 "보통은 5점 이상 점수 차가 벌어지면 퍽을 돌리면서 살살하는 게 일반적인데,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8골이나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스위스가 너무 심했다"고 말했다.
파젤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단일팀이 탄생하기까지의 복잡했던 과정과 차기 대회에서의 단일팀 전망까지 솔직하게 털어놨다.
다음은 파젤 회장과의 일문일답.
-- 단일팀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 한국이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을 때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이웃인 북한이 참여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초대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 후임인 조양호 전 조직위원장에게 말했지만 둘 다 관심은 보였으나 정치적인 상황을 들어 기다려보자고만 했다.
남북 단일팀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이다. 2014년 9월 우리가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에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부여하기로 하면서 단일팀 논의는 더욱 구체화됐다. (2016년 5월) 이희범 조직위원장이 새롭게 취임하면서 단일팀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단일팀이 구성되기까지 4∼5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것은 일종의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었다. 정치적인 문제는 문 대통령이 북한의 참여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면서 단번에 해결됐다. 스포츠적인 측면은 다소 복잡했다. 북한이 올림픽 출전권이 없었다. 또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한라그룹 회장)과 백지선 남녀 대표팀 총괄 디렉터, 새러 머리 여자 대표팀 감독이 단일팀 제안에 반대했다. 한국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뺏을 수 없다고 했다. IIHF의 내부 규정에도 어긋났다. 하지만 우리는 단일팀을 통해 올림픽의 가치인 평화와 존중, 우정의 가치를 전파하고자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의 올림픽 출전에 동의해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또 북한 선수를 경기당 3명만 출전시키는 것으로 절충안을 마련하면서 한국 쪽을 설득할 수 있었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북한과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 가교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북한 평양을 2차례 방문해 단일팀을 논의할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도 큰 도움을 줬다. 4∼5년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팀 워크의 결과로 단일팀이 탄생할 수 있었다.
-- IIHF 규정에 어긋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회원국은 어떻게 설득했나.
▲ 먼저 스포츠적인 측면에서 보면 대회에 큰 영향은 없었다. 여자 대표팀의 경우 한국은 세계 22위, 북한은 25위다. 단일팀이 같은 조의 세계 5∼7위 국가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가 세계 200위와 맞붙는 것과 같았다. 다만 논의가 새나가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로 생각해서 단일팀 논의는 비밀리에 진행했다. (단일팀의 1차전 상대였던) 스위스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스위스는 엔트리 확대가 불공정하다고 반대했지만 (단일팀의 2차전 상대였던) 스웨덴은 전폭 지지해줬다. 단일팀의 스위스전을 보고 개인적으로는 크게 실망했다.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8골이나 넣을 필요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보통은 5점 이상 점수 차가 나면 패스를 돌리면서 살살 하는 편이다. 그런데 8골이나 넣었다. 그러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북한에서 내려온 고위급 대표단,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함께 그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은 내게는 무척 뭉클했다.
-- 국내에서는 단일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단일팀으로 인해 한국 선수들이 경기에 뒤지 못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머리 감독이 좋은 선택을 했다. 경기당 북한 선수 5명을 뛰게 하자고 일부에서 주장했지만, 머리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3명으로 절충했다. 3명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일팀은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과 친선경기 등을 통해서라도 이런 단일팀의 평화 메시지를 계속 전파하고 싶다.
-- 처음에는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부여하는데 주저했다고 들었다. 한국 경기를 보니 잘한 것 같은가.
▲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은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달라고 계속해서 요청했다. 우리는 준비를 잘하면 주겠다고 했지만 정 회장은 역으로 출전권을 주면 준비를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일리가 있었다. 물론 올림픽에서 한 자리를 잃게 될 유럽 국가들은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반기지 않았다. 여자 쪽은 훨씬 쉬웠다.
한국은 국내 리그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좀 더 높은 레벨에서 뛸 필요가 있다. 세계 2위 리그인 러시아대륙간하키리그(KHL)에 참가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KHL은 한국과 일본으로 리그를 확장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아시아는 매우 큰 잠재력을 가졌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에도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줄 테니 준비를 잘해놓으라고 일렀다. 안 그러면 망신을 당한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와 함께 한국 아이스하키가 지속해서 성장하고 유소년 저변을 넓히는 문제를 논의 중이다.
우리는 한국 남녀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경기력에 매우 만족한다. 백지선 남자 대표팀 감독은 환상적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아이스하키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서 무척 행복하다. 백 감독은 한국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다고 들었다. 우리는 백 감독과 잘 협조하고 있다.
-- 베이징에서도 단일팀을 보게 될까.
▲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이다. 먼저 한국이 베이징 대회에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낼 실력이 돼야 한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베이징 대회에서 기존 8개 팀인 여자 아이스하키 출전팀을 10개 팀으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이 베이징에 자력 진출한다면 단일팀과 관련한 논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일팀은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라서 더 큰 메시지를 가질 수 있었다. 북한 선수단이 육로를 통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중국과 유럽에서는 단일팀이 갖는 메시지가 이번 대회처럼 크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순진한 사람은 아니다.
베이징 대회에서도 단일팀을 유지할지는 남북 정상과 IOC가 결정할 문제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서 단일팀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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