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원롯데 경영' 50년만에 흔들…韓롯데, 日 종속 심화하나(종합)
신동빈 대표이사 사임으로 日전문경영인들 日롯데 장악
신 회장 이사직 유지로 대표 복귀 가능성 남겨
신동주, 경영권 복귀 시도할 듯…"日경영진 신뢰 잃어 가능성은 희박"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일본 롯데의 지주사인 일본롯데홀딩스(이하 홀딩스)가 21일 이사회를 열어 최근 구속수감된 신동빈 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안을 승인하면서 50년 넘게 이어온 '한일 원롯데 경영'이 흔들리고 있다.
롯데그룹은 재일교포 사업가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1948년 일본에서 지금 홀딩스의 전신인 ㈜롯데를 설립한 데 이어 1967년 한국에서 롯데제과를 만든 뒤부터 줄곧 한일 롯데의 통합경영을 발판으로 성장해왔다.
재일교포 한국인 총수가 한일 롯데의 '원톱'을 맡아 양국의 사업구조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이런 통합경영은 오늘날의 롯데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으나 신 회장의 사임으로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 日롯데 독자행보할까…호텔롯데 상장·지배구조 개선·뉴롯데 차질
홀딩스 이사회의 신 회장 사임안 승인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일본인 전문경영인들이 경영권을 장악한 일본 롯데의 독자행보 여부다.
홀딩스는 신 회장 사임에 따라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가 됐다.
원래 신 총괄회장의 측근이던 쓰쿠다 사장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거치면서 신 회장의 측근이 됐다.
또다른 일본인 전문경영인 핵심 인사는 신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고바야시 마사모토(小林正元) 최고재무책임자(CFO)다.
한국 롯데캐피탈 대표까지 역임한 고바야시 CFO는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2016년 6월 롯데캐피탈 대표직을 사임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줄곧 홀딩스 CFO로 재직 중이다.
롯데 안팎에서는 쓰쿠다 사장과 고바야시 CFO가 중심이 된 일본인 전문경영인들이 신 회장의 유고를 계기로 일본 롯데의 실권을 장악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일 롯데의 '원톱'이던 신 회장의 실형 선고와 일본 롯데 대표이사직 사임을 계기로 일본인 전문경영인들이 일본 롯데의 실권을 장악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50년 넘게 이어져 온 한일 롯데의 통합경영에 일대 파란이 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홀딩스가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 99%를 보유한 대주주라는 지위를 활용해 한국 롯데가 진행하는 신규 투자나 인수·합병(M&A) 등에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제동을 걸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 경우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에 종속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는 롯데건설(41.42%), 롯데케미칼(12.68%), 롯데물산(31.13%), 롯데알미늄(25.04%), 롯데상사(34.64%), 롯데캐피탈(26.60%), 롯데지알에스(18.77%)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등 유통·식품 부문의 주요 계열사들은 지난해 10월 롯데지주로 분할합병되면서 일본 롯데의 간섭을 덜 받는 지배구조를 갖게 됐지만 화학·건설·관광 등의 계열사는 여전히 일본 롯데의 입김이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롯데지주 중심으로 짜인 지금의 한국 롯데 지주사 구조가 '반쪽 체제'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은 이른 시일 내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 롯데의 지분율을 낮추고 국내 주주의 지분율을 40% 수준까지 끌어올리려 했으나 영어(囹圄)의 몸이 되면서 이런 작업이 무기한 연기됐다.
결국 지배구조 개선을 중심으로 한 '뉴롯데' 계획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밖에 부재중인 신 회장의 재가나 동의 없이 일본에서의 주요 투자나 의사결정을 쓰쿠다 사장 등이 독단적으로 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이들이 신 회장 부재 기간에 일본 롯데를 적절히 관리하다가 추후 신 회장이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 등을 거쳐 경영에 복귀하면 그에게 '원톱' 자리를 돌려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은 사임했지만 부회장직과 이사 직위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롯데 관계자는 "홀딩스가 대주주의 지위를 활용해 한국 롯데의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럴 만한 실익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 신동주 권토중래할까…형제간 경영권 분쟁 재점화
신 회장이 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그와 2년 넘게 분쟁을 벌여온 신동주 전 홀딩스 부회장의 '권토중래'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홀딩스의 단일 최대주주인 광윤사 대표이기도 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3일 신 회장이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마자 입장문을 발표해 그의 사임과 해임을 촉구한 바 있다.
롯데 안팎에서는 2015년 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된 뒤부터 이른바 '무한주총' 전략을 표방하며 호시탐탐 홀딩스 이사직 복귀를 노려온 그가 신 회장의 사임을 계기로 이런 시도를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 롯데 경영권 탈환을 호시탐탐 노려온 신 전 부회장으로서는 동생인 신 회장이 실형선고를 받아 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한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은 오는 6월로 예정된 홀딩스 정기주총 전에라도 임시주총을 소집해 경영권 복귀를 시도하는 방안을 놓고 법률 전문가 등과 긴밀히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의 홀딩스 이사직 복귀가 성공하려면 쓰쿠다 사장 등 그동안 신 회장을 지지해왔던 일본인 전문경영인들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홀딩스는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임원지주회(6%) 등이 주요 주주여서 주총 표 대결에서 승리하려면 쓰쿠다 사장 등 일본인 임직원이 좌지우지하는 종업원지주회와 관계사 등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롯데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이미 일본인 경영진의 신뢰를 상실한 만큼 그의 홀딩스 이사직 복귀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은 이미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위반으로 2014∼2015년 홀딩스를 위시한 일본 롯데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서 해임됐던 인물"이라며 "이미 신뢰를 상실한 그가 신 회장을 대신해 홀딩스 이사직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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