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마늘 소녀 화이팅"…컬링에 빠진 경북 의성
여자대표팀 5연승 기원하며 5만 의성군민 기 모아 응원
컬링 중심에서는 80대도 규칙 알 정도…금메달 기원하며 선수 성씨는 '金'으로
(의성=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헐(hurry)∼, 헐∼"
20일 오후 경북 의성여고 체육관에 모여 동계올림픽 여자컬링 한국과 미국 경기를 지켜보던 의성군민 300여명은 우리 선수들이 스톤을 던질 때면 기를 모아 주고 싶은 듯 '헐'을 외쳤다.
헐은 컬링 경기중 얼음판을 닦으라고 지시할 때 쓰는 말이다.
김주수 의성군수와 김장주 경북도 행정부지사를 비롯해 70∼80대 어르신까지 의성여고 체육관이 모인 이들은 한마음으로 응원하며 우리 팀이 선전할 때마다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대표팀이 5엔드에 대량 득점을 했을 때와 10엔드 우리팀 승리로 경기가 끝났을 때는 금메달을 딴 것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짧은 한숨을 쉬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의성 출신이 중심이 된 컬링 여자국가대표팀이 연일 승전보를 전해오자 의성 전역이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에 버금갈 정도로 달아올랐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인구 5만3천여명에 불과한 의성군이 언론에 나오는 것은 '저출산'이나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처럼 다소 우울한 소식이 보도될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열리며 의성은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었다.
개막식도 하기 전 열린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조) 1차전에서 장혜지·이기정 팀이 승리했다. 믹스더블 1차전 승리는 컬링중심지 의성을 전국에 알렸다.
첫 승리 소식에 이어 여자컬링대표팀이 세계랭킹 1·2위인 캐나다와 스위스 경기에서 연이어 승리하고 지난 18일 세계랭킹 6위 스웨덴까지 깨뜨리자 상당수 의성군민은 만사 제쳐놓고 경기를 볼 정도로 컬링에 관심을 두게 됐다.
미국전을 지켜보며 의성여고에서 응원하던 80살이 넘은 한 어르신도 "노란 돌이 가운데 있어야 이기는 것이지?"라며 컬링 경기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컬링경기장이 의성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경기 방법은 잘 몰랐는데 이번 올림픽을 본 의성사람은 대부분 노란 돌(스톤)과 붉은 돌이 놓인 위치에 따라 어떻게 점수가 매겨지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자대표팀 연이은 승리가 의성을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 알리고 있다며 군민들은 좋아한다.
컬링대표팀에 '마늘 소녀'와 같은 별명이 붙으면서 특산물인 의성 마늘도 알려지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봉양면 분토리 김은정 선수 고향 마을 입구에는 주민이 응원 현수막도 내걸었다.
잔치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의성군민은 20일 미국전 응원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의성군체육회 회원과 군민들은 오는 21일에는 강릉을 직접 찾아 현장에서 응원할 계획이다.
의성군체육회는 대표팀 금메달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의성여고 정문에 선수 사진과 이름을 적은 현수막을 걸며 성이 김씨인 선수들 성을 모두 '金'으로 표기했다.
여자대표팀은 김민정 감독까지 포함해 모두 김씨이다.
의성여고도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면 전교생이 모여 응원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주민 김모(63·봉양면)씨는 "경북 출신이 아니면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 정도로 시골인 의성이 세계에 알려지다니 매우 기쁘다"며 "여자대표팀이 끝까지 선전해 좋은 결과를 거뒀으면 한다"고 밝혔다.
최재용 의성여고 교장은 "2006년 컬링부를 만들고 10여년 만에 엄청난 성과를 거두며 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졸업생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의성여고 컬링부인 안정연(3년)양은 "올림픽 무대에서 선전하는 선배들이 자랑스럽다"며 "4년 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나도 출전할 수 있도록 운동을 더 열심히 하며 기량을 쌓아갈 계획이다"고 했다. 김양은 태극기를 상체에 두르고 응원하러 나왔다.
컬링대표팀 선전은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부터 예상했다고 한다.
의성군은 10여년 전부터 시설 투자를 계속하며 컬링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군은 2006년 국내 최초로 4시트 국제 규격을 갖춘 전용 컬링센터를 짓고 국내외 대회를 유치했다.
2016년 아시아태평양선수권대회를 연 것에 이어 지난해까지 2년 동안 모두 15개 국내외 대회를 유치해 우리나라 컬링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여자대표팀 선수 구성도 선전을 뒷받침했다.
여자대표팀 선수는 김초희를 뺀 주전 4명은 모두 의성여중·고 출신이다.
김영미·김은정 선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다. 학교가 끝난 뒤 취미 삼아 컬링을 시작했다가 국가대표까지 된 것이다.
김경애 선수는 언니(김영미)를 보러 컬링장에 갔다가 시작했다. 이후 컬링 매력을 친구들에게 전하다가 김선영 선수를 입문토록 했다.
김주수 군수는 "선수들 노력과 지도교사 헌신을 바탕으로 의성군이 컬링 발전을 위해 투자한 결실이 나타나는 것 같아 기쁘다"며 "의성 딸들이 큰일을 해낼 수 있도록 모든 군민이 응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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