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핀란드에서 '설움' 겪은 한국, '하키변방' 굴욕 갚을까
6년 전 '평창 프로젝트'로 유망주 20여명 핀란드행…대부분 경기 제대로 못뛰고 귀국
'핀란드 유학파' 선수들 "핀란드 성향 잘 알아…마지막 경기 아닐 것" 각오
(강릉=연합뉴스) 신창용 김지헌 기자 = 실력 향상을 위해 선진국 유학길에 올랐으나 '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설움을 겪다가 돌아온 이들이 외나무다리에서 그 나라 대표팀과 다시 마주한다.
흔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 상당수가 고작 5∼6년 전 겪었던 생생한 경험담이다.
20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8강 티켓을 놓고 핀란드와 단판 승부를 치르는 한국 대표팀 25명 중 10명은 '핀란드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선수들이다.
핀란드 프로젝트는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 출전권 확보를 위해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2012∼2014년 유망주 20여 명을 세계적 아이스하키 강국 핀란드의 2부리그에 임대 이적시켰던 것이다.
공짜가 아니었다. 선수들 체재비와 연봉을 국내 구단 안양 한라가 댔다. 한라 구단주였던 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사재를 털었다.
없는 돈 쪼개가며 집안의 잘난 자식을 해외로 등 떠밀어 보냈던 과거 눈물의 가족사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핀란드 프로젝트는 생각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당시 핀란드는 남자 대표팀이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랭킹 2위의 '하키 강국'이었다. 한국에서 온 어린 선수들은 그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파견 선수들은 현지 구단이 처음 약속과 달리 경기에 거의 기용하지 않고 처우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힘든 생활을 했다.
선수들은 2부도 아닌 3부리그로 다시 밀려나거나, 원정 경기에 갔다가 몇 시간 동안 직접 차를 몰고 숙소로 돌아오는 등 프로 선수에게 합당하지 않은 대우를 묵묵히 견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당시 파업해 NHL에서 뛰던 핀란드 선수들이 대거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그 여파가 2부리그에도 미친 탓이 컸다.
끝까지 버텼던 선수 중 하나가 신상훈(25·상무)이다.
'핀란드 연수생' 2기 신상훈은 2013-2014시즌 2부리그 46경기를 소화하며 13골, 10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19일 강릉하키센터에서 훈련을 마친 신상훈은 "제가 있을 때 만난 선수들과 지금 핀란드 대표팀 선수들이 다르기는 하지만, 제가 있었던 곳인 만큼 핀란드와 붙는 것이 조금은 설렌다"고 말했다.
신상훈은 "그때는 6개월 동안 경기만 뛰다 보니 정신없이 생활했다"며 "그런 정규시즌 경험 자체도 처음이었고, 한 시즌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돌아봤다.
덩치 큰 북유럽 선수들을 접한 것도 큰 자산이 됐다. 신상훈은 "핀란드는 경기장 규격이 다양했는데, 작은 경기장에서는 덩치 큰 선수들이 더욱 거칠게 들어오곤 했다"고 떠올렸다.
핀란드는 현재 IIHF 랭킹 4위에 올라 있다. 21위 한국과는 다른 차원의 하키를 구사한다고 봐야 한다.
역시 핀란드 프로젝트 출신인 안진휘(27·상무)는 "저도 핀란드에서 플레이를 해봤는데 매우 조직적인 팀"이라며 "선수들이 팀플레이를 많이 하고 효율적으로 뛴다"고 말했다.
핀란드 유학파 선수들은 핀란드전이 이번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가 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안진휘는 "지금 핀란드 대표팀 보조 코치가 예전 제 감독"이라며 "그쪽 선수들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안다.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으니 꼭 잡겠다"고 공언했다.
신상훈은 "조별리그를 돌아보면 '닿을 듯 말 듯, 조금만 더, 한 끗만 더' 이렇게 느끼는 부분이 많아서 아쉽다"며 "한 발짝만 더 가면, 스틱 위치를 조금만 더 좋게 하면 되는데…"라고 세밀함의 부족을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핀란드전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각오로 한다"며 "선수단 전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직이 말했다.
한국-핀란드전은 20일 오후 9시 10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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