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누구나 시인' 남도 삼백리길

입력 2018-03-12 08:01
[연합이매진] '누구나 시인' 남도 삼백리길

(순천=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시 '나그네'에는 그리운 삶의 서정이 온전히 담겨 있다. 이 시의 '남도 삼백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순천의 남도 삼백리길은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벗으로 삼아 걷기 좋은 길이다.



걷다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남도 삼백리길은 순천만갈대길(해룡와온∼별랑화포, 16㎞), 꽃산넘어동화사길(별랑화포∼동화사, 20㎞), 읍성가는길(동화사∼낙안읍성, 14㎞), 오치오재길(낙안읍성∼접치재, 20㎞), 매화향길(접치∼계월이문, 22㎞), 십재팔경길(심원∼구례구역, 15㎞), 과거관문길(서문성곽터∼심원, 19㎞), 동천길(서문성곽터∼순천만, 12㎞), 천년불심길(선암사∼송광사, 12㎞), 이순신백의종군길(선평삼거리∼구례구역, 25㎞), 호반벚꽃길(맑은물관리센터∼맑은물관리센터, 45㎞) 등으로 이뤄져 있다.

남도 삼백리길은 11개 코스에 220㎞로, 세계 5대 습지인 순천만과 상사호, 낙안읍성, 선암사, 송광사, 동화사 등을 두 발로 걸어서 만나볼 수 있다. 11코스인 호반벚꽃길은 조계산을 가운데 두고 주암호와 마주하고 있는 인공호수인 상사호를 순환하는 힐링 자전거길로, 걷기에도 좋다.

◇ 선암사와 송광사 잇는 천년불심길

9코스인 천년불심길은 남도의 명산인 조계산(曹溪山·887m)에 가부좌를 튼 두 절집을 오가는 길이다. 1979년 전남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조계산은 주봉인 장군봉을 중심으로 연산봉, 깃대봉 등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게 펼쳐져 있다. 동쪽 기슭의 선암사(仙巖寺)와 서쪽 기슭의 송광사(松廣寺)를 잇는 고갯길은 계곡과 편백숲을 끼고 있어 경쾌한 물소리와 맑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지친 심신을 쉬게 한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5시간이면 충분한데 두 절집을 꼼꼼하게 둘러보면 6시간 넘게 걸린다.

유도열 문화관광해설사는 "남도 삼백리길은 인위적으로 길을 정비하기보다는 기존의 길을 잇고 자연환경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길을 조성했다"며 "천년불심길은 그 옛날 스님들이 선암사와 송광사를 오가며 수행하면서 걸었던 굴목재 숲길"이라고 말한다.





두 절집 중 선암사를 들머리로 삼는다.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거쳐 측백나무·전나무·참나무·고로쇠나무 등이 줄지어 서 있는 비포장도로를 쉬엄쉬엄 올라간다. 선암사 일주문까지 1㎞ 남짓의 평탄하고 널따란 길은 2006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숲길이다. 아직 동장군은 떠나지 않아서 그런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찬 바람이 불고 하늘은 유난히 파랗게 보인다. 얼음 밑으로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봄의 전령사처럼 다가온다.

부도밭과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전통야생차체험관을 지나면 왼쪽 선암천 계곡 위에 날아갈 듯 걸려 있는 승선교(昇仙橋·보물 제400호)가 시선을 붙잡는다. 조선 숙종 39년(1713)에 축조한 승선교는 홍예교(무지개다리)다. 우리나라의 홍예교 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한 석교로 꼽힌다.

하선교를 지나 승선교 아래 계곡 자연 암반으로 내려가면 홍교의 반원이 물에 잠긴 그림자가 되어 위의 홍예교와 하나의 원을 이루고, 팔작지붕의 2층 누각인 강선루(降仙樓)가 반원형 속에 앉아 있다. 승선교와 계곡의 암반, 강선루가 어우러진 풍경은 선계와 속세를 들고 난다. 조선 시대 척불로 핍박받던 스님들이 선암사 경내로 양반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강선루를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천년불심길은 강선루를 지나 연못인 삼인당에서 왼쪽으로 나 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선암사를 둘러본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범종루, 대웅전, 만세루, 설선당, 심검당 등이 단아하면서도 장중하게 들어서 있다. 어느 건물도 튀지 않는다. 선암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토종 매화인 수령 600년의 선암매(仙巖梅)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돌담길의 홍매화는 3월 말이면 어김없이 순백의 꽃망울을 터뜨린다.

유도열 해설사는 "선암매를 보기 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암매의 고고한 자태와 아늑한 절집이 잘 어울린다"며 "우리나라 해우소 중 가장 오래된 뒷간도 선암사의 명물인데 둘러보는 데 그치지 말고 반드시 쭈그리고 앉아봐야 한다"고 귀띔한다.

정호승 시인은 '선암사'라는 시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읊었다. 선암사 뒤편의 야생차밭에는 엄동설한을 거뜬히 이겨낸 차나무들이 푸르게 윤기를 발산해 봄이 멀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이어지는 돌계단

절을 빠져나와 천년불심길로 들어선다. 부도밭과 임선교(臨仙橋)를 지나자 대승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선암사 0.6㎞, 송광사 6.1㎞, 대승암 0.5㎞)에서 송광사 가는 길로 방향을 잡는다. 100여m 걷다 보니 생태체험 야외학습장이고, 천년불심길의 현판이 걸려 있는 리본 터널을 통과하니 60∼70년생 편백나무들이 연출하는 '수직세상'이 나타난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나무가 도열한 편백숲은 '와우'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천연 향균물질인 피톤치드를 가득 품은 편백숲으로 들어간다.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켠다. 눈을 감고 숲을 관통하는 햇살과 바람을 맞이한다. 시나브로 몸은 물론이고 마음마저 정갈하게 씻기는 듯하다.

편백숲을 지나면 큰굴목재까지 1.3㎞ 구간은 제법 가파르다. 흙길보다는 돌너덜이 많고, 오르면 오를수록 고개의 경사는 급해진다. 호젓한 숲길이 아닌 그야말로 가파른 등산로다. 계곡 양옆으로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가 뿌리 박고 있고, 참나무 사이로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때죽나무, 산벚나무, 쪽동백나무 등이 눈에 띈다. 숯가마터를 지나면 초록빛 이끼가 덮여있는 호랑이 턱걸이 바위를 만난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호랑이가 이 바위에 턱을 괴고 있다가 착한 사람이 지나가면 그냥 보내주었지만 나쁜 사람이면 해코지를 했다고 한다.



산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돌계단은 끝나는가 싶으면 휘어져 다시 이어지고, 호흡도 빨라진다. 장딴지도 뻐근해지고 발걸음도 고되다. 중간중간 땀을 훔치며 숨을 고른다. 나무계단을 지나면 큰굴목재에 닿는다. 잠시 다리쉼을 한 뒤 고개 아래 보리밥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평상에 앉아 보리밥에 된장과 각종 나물을 비벼 먹는다. '시장이 반찬'이어서 그런지 꿀맛이다. 보리밥집은 모두 3곳인데, 가격은 세 집 모두 6천원이다. 자동차를 선암사에 두고 온 사람들은 대개 여기서 원점 회귀한다.

동동주를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걷는다. 호젓한 산길과 배도사 대피소, 송광사 주변 마을 사람들의 소득원이었던 숯가마터를 지나면 송광굴목이재다. '해발 720m'가 새겨진 표지석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천자암(天子庵)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장군봉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1.7㎞ 떨어진 천자암에는 두 그루의 곱향나무 '쌍향수'(雙香樹·천연기념물 제88호)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송광사로 내려가면 40여 분 더 걸린다.

송광사로 곧장 내려간다. 계곡과 조릿대를 끼고 걷는 길은 계속 내리막이다. 토다리 삼거리를 지나면 보소가 반긴다.

안내판에 따르면 영·정조 때 승려들의 신분은 팔천(8가지 천민)에 해당해 노예나 다름없이 공역을 져야 했다. 노역에 동원돼 지칠 대로 지친 송광사 스님들이 관아를 짓는 데 사용할 대들보용 나무를 힘들게 운반하며 이곳에서 쉬고 있을 때 한 스님이 눈짓을 했다.

뜻을 알아차린 스님들은 감독이 없는 틈을 타 낭떠러지 '소'를 향해 대들보를 힘껏 밀었더니 '소'로 빨려 들어간 대들보는 영영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나무가 없어진 걸 알게 된 감독은 스님들을 괴롭히며 찾아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견디기 힘든 스님들이 기원했더니 10리 밖 동강(桐江) '곡천' 다리 밑의 '삼밧소'로 대들보가 떠올랐다고 적혀 있다.



◇ '무소유' 법정스님이 수행했던 송광사 불일암

평평한 산길에서 평지로 내려서 남새밭과 운치 그윽한 대숲을 거쳐 송광사에 든다. 맨 먼저 개울 옆 침계루(枕溪樓)가 눈길을 끈다. '시내를 베고 누워 있다'는 누각은 운치 있는 이름처럼 길이가 제각각인 기둥이 개울의 경사에 맞춰 기다란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바로 옆 우화각(羽化閣)은 대웅보전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능허교(凌虛橋) 위에 놓인 집이다.

능허교는 승선교와 마찬가지로 무지개다리 아래 물을 통해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차단해 주는 용머리 석상이 달려 있다. 특히 용이 엽전 세 닢이 꿰인 줄을 물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조선 숙종 때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돌다리 불사를 벌였는데 당시 쓰고 남은 시줏돈이라고 전해진다.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 오르는 다리'라는 능허교와 우화각, 잔잔한 개울이 어우러진 모습은 송광사 최고의 풍경이다.

능허교를 건너면 사천왕문이고, 이곳을 지나면 석탑이 없는 대광보전이다. 불보(佛寶)사찰 통도사, 법보(法寶)사찰 해인사와 더불어 삼보(三寶)사찰로 손꼽히는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는 고려 무신정권 때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주도한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해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 보조국사는 1201년 고려 희종 6년(1201)에 열반했는데, 희종이 직접 '불일 보조국사'라는 시호와 '감로탑'이라는 탑호를 내렸다. 관음전 뒤편에 지눌스님의 부도탑인 감로탑이 있다.



송광사는 천자암 쌍향수, 공양그릇 '능견난사'(能見難思), 쌀 7가마의 밥을 담을 수 있다는 나무 밥통 '비사리구시' 등 세 가지 명물 외에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 혜심고신제서(국보 제43호), 국사전(국보 제56호), 금동요령(보물 제176호), 하서당(보물 제263호), 약사전(보물 제302호), 영산전(보물 제303호)을 보유한 사찰 문화재의 보고다.

승보종찰조계총림(僧寶宗刹曺溪叢林)이란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나오면 천년불심길의 종착점이자 시발점인 송광사 매표소까지의 흙길은 호젓하고 밟는 촉감이 부드럽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서 은둔 수행을 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해본다. 마음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천년불심길은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해지는 길이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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