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서른 살 이승훈의 1만m 위대한 도전…극복의 가치 알렸다
적지 않은 나이, 희박한 메달 가능성, 컨디션 악화
모두가 말릴 때 1만m 출전 밀어붙인 이승훈
"내가 안 뛰면 한국 빙속 장거리 계보 끊어져"
(강릉=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m는 빙상의 마라톤이라 불린다.
약 13분간 쉬지 않고 얼음을 지쳐야 하는데, 마라톤처럼 체력 소모가 심하다.
다리 근육에 경련이 오기 쉽고, 심할 경우 탈진 증세가 따라오기도 한다. 경기 직후 몸무게가 2~3㎏씩 빠지는 경우도 있다.
워낙 힘든 종목이다 보니, 그 여파가 다른 종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래서 동계올림픽 10,000m 출전권을 따고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장거리 간판 이승훈(대한항공)에게도 10,000m는 버거운 종목이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10,000m 경기에 출전하면 다음 날 몸살감기 증상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승훈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10,000m를 뛰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이들은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큰 매스스타트에만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나이 문제를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승훈은 올해 만 30세다. 대표팀 막내 정재원(17·동북고)보다 무려 13살이 많다.
체격 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유럽권에선 30대 선수를 찾기 쉽다. 그러나 아시아 무대는 다르다.
15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m에 출전한 30대 아시아 선수는 이승훈뿐이었다.
그러나 이승훈은 평창올림픽 10,000m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거리 종목인 남자 1,500m의 출전권을 후배 주형준(동두천시청)에게 양보했다.
그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전을 강행한 이유는 국내 10,000m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국내에서는 10,000m를 뛰는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기피현상이 두드러진다. 뛰는 선수가 없다 보니 경기 자체가 무산되기 일쑤다.
그는 자신의 레이스를 통해 많은 빙상 꿈나무들이 희망과 도전 의식을 품길 바라고 있다.
이승훈은 최근 인터뷰에서 "내가 포기하면 한국의 10,000m는 사라진다"라며 "나라도 10,000m에 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나이, 매스스타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험성, 메달 획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딛고 이승훈은 이를 악물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자신과 사투를 벌인 이승훈은 12분 55초 54의 개인 최고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아름답고 위대한 도전은 금메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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