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노조는 "정사원 클럽"…비정규직 권익 보호에 무관심
비정규직의 노조가입 거부, 노조조직률 계속 저하
비정규직 근로자, "우리편 돼 줄 거라는 기대, 배신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근로자의 편"이던 일본의 노동조합이 지난 30여 년간 상대적으로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정규직 사원' 보호조직으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노동조합은 정규직의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 채용 증가를 묵인했다. 이 바람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에 균열이 생겼지만, 노조는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지적했다.
"노조는 비정규직의 편이 돼 줄 거라는 기대를 배신했다."
히가시니혼(東日本)에 있는 자동차 부품 메이커 공장에서 일하는 40대 남성은 작년 가을 사내 노조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개정 노동법의 "5년 규정" 취지를 무력화하는 사규를 바꾸도록 같이 요구하자고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사는 비정규직이 연속해서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을 2년 1개월로 정해 놓고 있다. 이 기간이 찬 후에는 6개월의 '공백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업무에 복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오랜 세월 근무해도 정규직처럼 무기한 고용권리를 취득할 수 있는 5년을 넘을 수 없다. 정규직 전환 기간을 정한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편법인 셈이다. 정규직 전환제도는 있지만, 장벽이 높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정규직 전환시험의 경우 시험일정조차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어쩌다 일정을 알고 응시한 동료 3명은 모두 떨어졌다.
"반년 동안의 공백 기간이 설정돼 있어 무기직 전환권리를 얻을 수 없다. 노조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지만, 담당 노조간부는 "제도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먼저 노조에 가입해 조합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자 "(당신 외에는) 조합원이 되려는 기간제 근로자가 없을 것"이라며 받아 주지 않았다.
이 남성은 결국 제도변경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떠벌려 일을 크게 만들었다간 회사에 찍혀 현재의 계약마저 연장이 거부돼 해고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입지가 약한 비정규직은 '튀는 못'이 될 수 없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실제로 해고되는 비정규직이 적지 않다. 철판인쇄 업체에서 일하는 남자 계약사원(56)은 작년 1월 고용종료 통보를 받았다. 올해 3월까지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지만 무기직 전환권리를 얻기 하루 전에 해고됐다. 상사는 "법에 따라 오늘까지 밖에 고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자녀가 사립대학에 다니고 집 융자도 남아있어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했지만 사내 노조에는 상담하지 않았다. 전에 조합원인 동료로부터 "우리 노조는 계약사원은 상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기억나서다.
임금인상투쟁인 춘투 시기가 되면 직장에서 임금인상 이야기가 화제가 되지만 자신의 급여는 일하기 시작한 7년 전부터 단 1엔도 오르지 않았다. 그는 "섣불리 노조에 상담했다간 회사에 고스란히 보고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사외노조에 가입해 회사에 해고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노동조합의 중앙조직인 렌고(連合)가 발족한 1989년 이후에도 근로자의 노조가입비율(조직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노조는 1949년 55.8%로 정점을 찍은 조직률이 1989년 25.9%까지 떨어지자 렌고를 발족시키면서 운동방침 수정을 내걸었다. 그러나 조직률은 계속 낮아져 작년에 17.1%로 최저기록을 갈아 치웠다. 불황과 규제 완화로 지난 30년간 크게 늘어난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영향이 크다. 2009년에는 조직률이 34년 만에 일시 상승세로 돌아서기도 했으나 리먼 사태 이후 대량 해고로 분모인 근로자 수가 줄어든 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규직 사원의 고용과 임금을 지키는 방파제"라는 냉소적 평가를 바꾸기 위해 렌고 4대 회장인 사마모리 기요시(笹森?)가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 등 외부인사 7명의 도움을 받아 2003년 렌고개혁에 관한 보고서를 마련했다. 당시 보고서는 렌고가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 사원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거나 "변화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당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진노 나오히코(神野直彦) 도쿄(東京)대 명예교수는 "보고서에서 지적한 사항들이 거의 실행되지 않아 과제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렌고의 비정규직 조합원은 전체의 15%인 106만 명이다. 이 중 4분의 3을 섬유, 유통 등의 노조들로 구성된 산업별노조 'UA젠센'이 차지하고 있다. 이 업계는 비정규직이 많아 정규직만으로는 근로자의 과반을 대표하는 노조를 결성할 수 없는 기업이 적지 않다. 자동차총연합회 조합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전기연합은 불과 0.4%다.
아사히신문은 작년에 도요타자동차와 혼다 등 주요 자동차 메이커 8개사가 모두 '5년 규정'을 빠져나가기 위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산별노조 최고위 인사는 "한마디로 탈법행위"라고 규정하고 "일본 전국이 주목하는 모범이 되어야 할 기업이 하는 짓은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가 나간 직후 렌고는 "법 개정을 계기로 유기계약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추진해온 렌고의 운동에 비춰 유감"이라고 발표했지만, 산하 자동차총연합회에 개선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자동차총연도 기간제 근로자를 정사원으로 등용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료를 발표하지 않은 혼다를 제외한 7개사의 2016년 비정규직의 정사원 전환은 기간제 근로자 전체의 8%에 그쳤다.
자동차총연의 고위 관계자는 "법에 쓰여 있는 대로 하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했다고 아사히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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