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위기 넘긴 은혜초 50회 졸업식…"미안한 마음으로 왔다"
교사들 대다수 불참 '허전'…졸업생 수십명 방문 '즉석 동창회'
신학기 정상운영 안간힘…일부 학생 전학·교사해고 문제 등 과제 산적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가까스로 폐교 위기를 넘긴 서울 은평구 은혜초등학교 제50회 졸업식이 13일 열렸다.
언뜻 보기에는 여느 졸업식과 다르지 않았다.
선배들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 중인 고사리손 오케스트라의 연습 연주가 울려 퍼지고 부모는 물론 조부모까지 모두 출동한 졸업생 가족들은 앉을 자리를 찾느라 부산했다.
행진곡에 맞춰 입장하는 졸업생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에 부끄러운 듯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최신형 스마트폰과 준전문가용 DSLR 카메라를 든 사람들 사이에서 늙은 사진가는 손님을 찾지 못했다.
운동장에서는 방금 종업식을 마친 재학생 예닐곱 명이 선배들 졸업식에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공놀이에 열중했다.
이날 은혜초를 졸업한 학생은 모두 28명이다. 전국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보다 약간 많은 정도다.
오전 11시 졸업식을 시작해 국민의례를 마친 뒤 최순옥 교장이 한 명 한 명에게 졸업장을 주고 모든 졸업생이 단상에서 소감을 말하고 내려가기까지 25분가량밖에 안 걸렸다.
최근 폐교 위기를 넘긴 은혜초 졸업식이라 다른 학교에선 보이지 않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식이 진행된 강당 왼쪽에 마련된 교사용 20개 좌석은 졸업식이 시작한 뒤에도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5분가량 지나서야 외국인 교사 2명을 포함해 네다섯 명의 교사가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강당 뒤편에는 롱패딩을 입은 작년 졸업생 수십 명이 무리 지어 있었다.
이미 학교를 떠난 선배들이 졸업식에 참석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동창회도 할 겸 폐교 위기를 겪은 모교를 보러왔다고 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한 졸업생은 "모교가 없어진다는 얘기가 나오니 마음이 참 그랬다"고 말했다.
최순옥 교장은 학교장 회고사에서 "(올해는) 미안한 마음으로 졸업식장에 섰다"면서 "은혜초 졸업생임을 자부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울먹이며 졸업생들에게 당부했다.
은혜초는 작년 12월 학생 감소에 따른 재정적자를 이유로 갑작스럽게 폐교를 신청해 논란이 됐다.
이후 지난달 말 학교를 정상운영하는 대신 학교법인의 수익용 재산을 활용해 재정적자를 보전하기로 은혜초와 교육청이 협의하면서 폐교 논란은 일단락됐다. 현재 교육청은 수익용 재산 활용허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은혜초 폐교 논란은 학령인구 감소가 '통계상 문제'가 아닌 설립된 지 50년 된 학교가 문을 닫게 할 정도의 현실적 문제가 됐다는 충격을 줬다.
은혜초는 정상적인 학사운영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지만 개학이 코앞인데도 아직 신학기 교육과정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지난 9일 학교 측은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달 말까지 자녀를 전학시킬 계획이 있는지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12일까지 답변 회신을 부탁했지만, 아직 상당수 학부모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은 폐교 논란 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교사를 해고하라고 요구하며 이를 지켜본 뒤 전학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다.
올해 단 한 명의 신입생도 등록하지 않은 데다가 일찌감치 전학 간 학생들도 있어 은혜초는 학년당 한 학급 정도밖에 없는 '초미니학교'가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교사 해고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실제 은혜학원 쪽도 정리해고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청 관계자는 "해고된 교사들을 공립학교에 특별채용할 여지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첫째 아들을 졸업시킨 학부모 박모(48)씨는 "마냥 어리기만 했던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해 청소년이 된다고 하니 왠지 좀 멀어지는 거 같아 시원섭섭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씨는 "아들의 모교가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와 섭섭했는데 반대결과가 나왔다"면서 "은혜초는 전통과 저력이 있는 학교인 만큼 좋은 교사진만 갖춘다면 잘 운영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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