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과징금' 손사래치더니…금융위 부랴부랴 "TF 구성"
"과징금 규모 현재로서는 알 수 없어"…"자세한 건 법제처에 물어보라"
2008∼2009년 금융위 결정에 책임론 불거져 '다스'와 맞물릴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현행 금융실명법과 1993년 발표됐던 긴급재정경제명령 등 법령을 아무리 해석해도 이 회장에게 과징금을 매길 방법이 없다는 논리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현행법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기보다 추후 입법으로 해결할 과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의 차명 금융자산에서 발생한 이자·배당소득에 원천징수세율 90%를 적용한 소득세 차등 과세는 불가피하지만, 과징금까지는 어렵다는 게 금융위 입장이었다.
이는 하루 전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안과 정면 배치된다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혁신위는 금융실명제 실시 전 만들어진 차명계좌는 물론, 그 이후 만들어진 차명계좌에 모두 과징금을 매겨야 한다고 권고했다.
혁신위의 논리는 간단했다. 대다수는 실명 거래로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반면, 이 회장은 수많은 차명계좌를 동원해 세금을 회피했을 뿐 아니라 실명제의 도입 취지를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과징금을 매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혁신위는 "실명제 실시 이후에도 법 취지를 위반하면서 (이 회장이) 비실명 계좌를 유지하는 행위가 존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과징금 등 부과 없이 소득세 차등 과세만으로 과연 충분한 억제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위의 권고에 부정적인 금융위의 태도는 여권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금융위는 실명법 등에 대한 유권해석을 법제처에 요청하고, 최 위원장이 지난달 브리핑에서 "합리적 방안을 찾겠다"고 말하는 등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날 금융위가 건네받은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한 마디로 '혁신위의 권고대로 이행하라'는 것이다.
법제처는 "(1993년 8월 12일) 실명제 실시 후 실명전환의무 기간(2개월) 내에 자금 출연자(이 회장)가 아닌 타인의 명의로 실명확인 또는 전환하였으나, 실명법 시행(1997년 12월 31일) 이후 해당 차명계좌의 자금 출연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경우 과징금을 원천 징수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위는 법제처의 법령해석이 나오자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과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보도참고자료로 배포했다.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입장을 바꾼 것인데, 실무 책임자이면서 이날 자료를 작성·배포한 금융위 박광 은행과장은 관련 질문에 "자세한 내용은 법제처에 문의하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논란이 법제처의 법령해석으로 정부 내에선 일단락됐지만,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삼성 측과의 법정 다툼으로 비화할 소지가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TF를 가동하지 않은 만큼 과징금 부과 액수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별검사 수사 때 발견됐던 차명계좌 1천197개에 자산이 4조4천억원이었다는 점에서 과징금이 2조원 안팎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금융권에서 나온다.
또 금감원이 지난해 말 전수조사 결과 찾아낸 차명계좌 32개, 경찰이 이 회장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면서 밝혀낸 차명계좌 260개를 더하면 차명계좌는 1천500개에 육박한다. 과징금 액수는 더 커질 수 있다.
이와 다른 측면에서 금융위가 지난 정권에서 지나치게 삼성을 감싸고 돌았다는 비판이 거세질 경우,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소유 의혹이 불거진 다스 소송비용을 삼성이 대납했다는 주장과 맞물려 금융위의 '책임론'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건희 차명계좌 TF'는 지난달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2008년 차등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과 2009년 차명계좌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한 금융위의 유권해석과 관련해 업무처리의 적정성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zhe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