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해야"…현실적으로 어려울 듯(종합4보)
법제처 해석에도 금융사 1993년 당시 계좌원장 없어 실제 부과는 불가능할 듯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 법제처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유권해석을 요청한 주무부처 금융위원회는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금융회사들이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시행 당시 계좌 원장을 보관하고 있지 않아 현실적으로 과징금 부과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2일 금융위에 따르면 법제처는 이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법령 해석을 금융위에 전달했다.
이는 금융위가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차명으로 실명 전환되거나, 차명으로 실명 확인한 경우 금융실명법 등에 따른 실명전환 및 과징금 징수 대상인지를 묻는 지난 1월 법령 해석 요청에 대한 답변이다.
법제처는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타인이 자신의 명의나 가명으로 개설한 계좌를 금융실명제 실시 후 실명전환의무 기간(2개월) 내에 자금 출연자가 아닌 타인의 명의로 실명확인 또는 전환했지만 이후 해당 차명계좌의 자금 출연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경우 자금 출연자는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하고 금융기관은 과징금을 원천징수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이날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그동안 논란이 됐던 이른바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전 회장의 대부분 계좌에 대해 소득세 중과나 과징금 부과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보유한 금융회사들이 1993년 8월 당시의 계좌 원장을 보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통상 10년치 기록 정도를 보유하고 나머지는 폐기한다"면서 "기록이 없다면 과세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 논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시작됐다.
차명계좌에 들어 있던 4조4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제대로 과세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금융위원회와 국세청이 추가 과세 방안을 검토하면서 소득세 중과 방침을 끌어냈다.
금융실명법 5조는 '비(非)실명으로 거래한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소득세의 원천징수세율을 따로 90%로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이 회장 측은 1천억 원 이상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시민단체, 금융행정혁신위원회 등은 금융실명법 시행 이전에 개설된 계좌 27개에 대해 과징금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금융실명법에 따르면 과징금은 금융자산 가액의 50%로, 이를 적용하면 이 회장 측은 2조원 안팎을 추가로 납부해야 할 수 있다.
소득세 중과까지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던 금융위는 과징금 부과와 관련한 법 해석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지난 1월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청했다.
법제처가 이번에 과징금 부과가 맞다는 유권해석을 내림에 따라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1천억원 이상의 소득세중과 뿐 아니라 최대 2조원의 과징금도 부과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2008년 특검에서 밝혀진 이 회장 차명계좌는 1천197개로 액수는 4조4천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이 지난해 말 전수조사 결과 찾아낸 차명계좌 32개, 경찰이 이 회장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면서 밝혀낸 차명계좌 260개를 더하면 총 1천489개로 늘어난다.
이 회장 측은 앞서 삼성 특검이 밝혀낸 차명계좌에서 2009년에 자금을 인출하면서 이자와 배당소득에 당시 최고세율(38%)을 적용해 총 464억 원을 납부한 바 있다.
한편 금융위는 법제처의 법령해석에 따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 실무운영상 변화에 대응하고자 국세청·금감원 등 관계기관과 공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대응하기로 했다.
삼성은 이 사안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법제처와 금융위원회의 과징금 방침은 기본적으로 이 회장 개인 재산에 관한 것인 만큼 개별 회사 차원에서 뭐라 언급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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