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만남 '화기애애'…김여정 "오징어·낙지부터 통일해야"
2시간50분 만남…문 대통령 "세계 이목 집중", 특사 김여정 "통일 주역 되시길"
김여정이 들고 있던 파란 파일은 친서…문 대통령만 읽어봐
김영남 "통일까지 건재했으면…문익환 목사와 같은 문씨인가" 농담
임종석 "오징어와 낙지 표기 남북이 정반대"…김여정 "그것부터 통일해야겠다"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방남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 간 10일 역사적 만남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청와대 본관 현관 밖에서 맞게 해 북측에서 온 손님에 예를 다했고 북측 대표단은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내 평양으로 초청하겠다는 뜻으로 화답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주변에 평소보다 많은 경호 인력을 배치하는 등 일찍부터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긴장과 설렘이 공존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 접견 시각인 오전 11시를 1분 앞둔 10시 59분 북측 대표단이 도착했다.
첫 번째 차량에서 검정 코트 차림의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두 번째 차량에서 역시 검정 코트를 입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내렸고 현관 밖에 있던 임 실장은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도 함께 도착했다.
문 대통령은 임 실장의 안내를 받아 본관에 들어선 북측 대표단을 환영했다.
문 대통령은 김 상임위원장에게 "(어제) 밤늦게까지 고생하셨다"며 "추운데 괜찮으셨나"라는 말로 안부를 물었고 김 상임위원장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문 대통령이 "추운 날씨에 밤늦게까지 고생 많으셨다"고 인사를 건네자 김 제1부부장은 "대통령께서 마음을 많이 써주셔서 괜찮았다"고 화답했다.
인사를 마치고 나서 김 상임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은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김 제1부부장은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 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고 적었고, 김 상임위원장은 "통일 지향의 단합과 확신의 노력을 기울려(기울여) 나감이 민족의 념원(염원)이다"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과 신영복 선생의 서화 '通'과 판화가 이철수 선생의 한반도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문 대통령은 분단 극복과 통일을 염원하는 뜻이 작품에 담겼다고 직접 설명했다.
이어 2층 접견실로 이동한 문 대통령과 두 사람은 북측의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우리측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접견을 시작했다.
이들을 수행한 리택건 당 통전부 부부장과 김성혜 통전부 통전책략실 실장은 뒤편에 따로 자리를 잡았다.
접견 시작 때 눈길을 끈 것은 김 제1부부장이 들고 온 파란색 파일이었다.
이 파일이 김 제1부부장을 그림자처럼 따른 김성혜 통전책략실 실장이 들고 다니던 '007 가방'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친서일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퍼졌다.
오전 11시 10분 접견이 시작되자 김 제1부부장은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임을 밝히고 휴대한 파란 파일 속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를 꺼내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혼자 A4 용지 크기의 친서를 읽고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화답했다. 친서에 방북 초청 내용이 담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 상임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을 남북이 함께 축하하자"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 대표단과 우호적 분위기에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 전반을 폭넓게 논의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에 북미 간 조기 대화가 필요한 만큼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당부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핵 문제나 한미 연합 훈련 등 구체적 사안을 언급하지는 않았다"면서 "접견은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1시간 20분가량의 접견을 마치고 충무실로 자리를 옮겨 열린 오찬은 더욱 편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에 전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남북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하고 "남북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하여"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따뜻하고 친절하게 환대해 줘 동포의 정을 느낀다"면서 "불과 40여일 전만 해도 이렇게 감동적인 분위기가 되리라 생각조차 못했는데 개회식 때 북남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니 한 핏줄이라는 기쁨을 느꼈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올해가 북남관계 개선의 획기적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 제1부부장은 "이른 시일 내 평양에서 뵀으면 좋겠다"며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많은 문제에 대해 의사를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서훈 국정원장을 가리키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 북을 자주 방문했던 분들인데 제가 이 두 분을 모신 것만 봐도 남북관계를 빠르고 활발하게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남북 정상회담을 총괄했던 일을 비롯해 2004년 7월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어머니를 모시고 금강산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하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조 장관이 김 상임위원장이 1928년 2월 4일생이라고 소개하자 문 대통령은 뒤늦은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고 "제 어머니가 1927년생이신데 건강 관리 비법이 무엇인가"라며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라고 덕담했다.
김 상임위원장이 "조국이 통일되는 날까지 건재했으면 한다"고 하자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등산과 트래킹을 좋아한다는 점을 소개하고 "젊었을 때 개마고원에서 한두 달 지내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렇게 오신 것을 보면 말도 문화도 같기 때문에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에 김 제1부부장은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오기가 힘드니 안타깝다"면서 "한 달 하고도 조금이 지났는데 과거 몇 년에 비해 북남관계가 빨리 진행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북남 수뇌부의 의지가 있다면 분단 세월이 아쉽고 아깝지만 (북남관계가)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공동입장한 장면은 단연 화두였다.
김 제1부부장은 "개회식이 다 마음에 든다"며 "특히 단일팀이 등장할 때가 좋았다"고 강조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역사를 더듬어 보면 문씨 집안에서 애국자를 많이 배출했는데 문익점이 붓대에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와 인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며 "문익환 목사도 같은 문씨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후식으로 호두과자가 나오자 문 대통령은 "천안지역 특산 명물인데 지방에서 올라오다 천안에서 사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식을 놓고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 임종석 비서실장은 "남북한 말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데 오징어와 낙지는 남북한이 정 반대더라"라고 했고 김 제1부부장은 "그것부터 통일을 해야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8년 5개월 만에 청와대를 찾은 북측 고위 인사들과의 오찬은 오후 1시 49분에 끝났다. 청와대 본관 앞에서부터 오찬까지 문 대통령이 함께한 시간은 총 2시간 5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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