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해낸' 황정민의 열연…연극 '리차드 3세'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괜히 '천만 배우'가 아니다. 황정민이라는 스타의 이름값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리차드 3세'는 올 초 연극계 화제작 중 하나였다. 잇따라 1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계 스타로 자리 잡은 황정민이 10년 만에 고향인 연극무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다.
'리차드 3세'는 영국 장미전쟁 시대의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이 원작이다. 1400년대 영국, 전쟁이 끝난 뒤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막내동생 리차드는 왕권에 불만을 품는다.
꼽추로 태어난 리차드는 못생긴 얼굴에 왼팔은 움츠러든 인물이다. 권모술수에 능한 그는 온갖 악행을 저지른 끝에 형과 조카 등 가족은 물론 가신들을 차례로 숙청하고 결국 왕위에 올라 '리차드 3세'가 된다.
타이틀롤을 맡은 황정민은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공연 내내 곱사등 모양으로 본뜬 의상을 입고 다리를 절며 손도 구부린 채 연기하는 황정민은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얼굴은 물론 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열연한다.
음모를 꾸미는 악인의 속마음을 드러내며 방백하다 사람들 앞에서 선한 척 180도 표정을 바꾸는 리차드의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낸다. 왕이 되고 싶은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강한 카리스마로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리차드는 대부분의 장면에 등장하는 만큼 대사의 분량도 많고 속도도 빠르다. 말투 역시 고전적이라 쉽지 않은 대사들을 또박또박 관객들의 귀에 꽂히게 전달하는 것 또한 황정민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황정민 외에 다른 배우들도 모두 제 몫을 해낸다. 에드워드 4세와 스탠리 경 등 1인 2역을 소화하는 정웅인, 에드워드 4세의 부인 엘리자베스 왕비역의 김여진은 물론 '감초 연기의 달인' 임기홍 등 조연들, 각각 요크가의 황태자와 왕자역을 맡은 아역배우 차성제, 이우주까지 어느 한 명 빠지지 않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 뮤지컬 배우 박지연은 장기를 살려 노래도 들려준다. 국립창극단 단원 출신인 정은혜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넓고 깊은 CJ토월극장의 무대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무대 장치는 단순하지만 고풍스럽고 웅장한 분위기를 살렸다. 스크린을 이용한 영상 활용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셰익스피어가 쓴 원작은 그리 쉽지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연극은 리차드가 중간중간 극 내용을 해설해주고 고전적인 대사들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웃음 코드도 적절히 삽입하는 등 사전에 이 작품에 대해 몰랐던 관객들도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인터미션(중간 쉬는 시간) 없이 100분간 긴장감 있게,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커튼콜 때 황정민의 등장 모습은 마지막까지 볼거리를 선사한다. 공연은 3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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