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해외취업 장밋빛 미래만 제시…음지 외면하는 정부

입력 2018-02-12 06:21
청년해외취업 장밋빛 미래만 제시…음지 외면하는 정부

정부·산업인력공단, 긍정평가 담은 설문내용 적극 홍보

부정평가 많은 'K-MOVE 취업처 현황 조사' 보고서는 외면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기록적인 실업난 탓에 해외로 눈을 돌리는 청년이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일자리의 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정부 산하기관의 용역보고서가 나왔다.

정부는 그러나 이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는 대신 해외 취업의 '장밋빛 미래' 홍보에만 열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의 해외취업 지원사업인 '케이무브'(K-MOVE) 홍보는 현실과 괴리가 적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달 17일 공동배포한 '해외취업자 65.6% 만족, 청년 해외에서 길을 찾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는 해외취업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으로만 일관했다.

설문조사 결과 합리적인 근무환경 등으로 만족도가 크며, 귀국 청년 대부분은 해외취업이 도움됐다는 응답을 했다고 강조했다.

'K-MOVE 성공스토리 공모전'을 통해 뽑힌 5명의 성공사례 내용도 상세히 담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보도자료 배포 전날 역시 산업인력공단이 발간한 'K-MOVE 취업처 현황 조사' 용역 연구보고서에는 판이한 실상이 담겼다.

K-MOVE를 통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독일에 취업한 22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취업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6점에 불과했다.

다른 이에게 추천하겠다는 이들은 응답자의 49%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근로조건 만족 비율은 독일 45.8%, 인도네시아 41.9%, 카타르 36.4%, 베트남 20.7% 등 전반적으로 저조했다.

전체 응답자의 19%는 구인 공고와 실제 근로조건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인식했다.

특히 베트남은 29.3%가 이런 차이를 느꼈으며, 인도네시아(22.6%), UAE(17.7%) 등의 국가에서도 괴리를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보고서에는 해외취업기업 현지평판 조사 결과도 담겼다.

응답자들은 한인 기업이 구인 공고 대비 실제 근로조건에서 차이가 가장 크다고 응답했다.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는 응답 비율은 한인 기업보다 현지기업·법인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내용은 해외취업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핵심 정보지만, 이튿날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엉뚱하게 청년 구직과는 동떨어진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 사이트에만 올려놨을 뿐이다. 요약본만 확인할 수 있다.

청년 해외취업의 '양지'만 비추고 '음지'는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두 설문의 성격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가 알맞지 않았고 부정적인 부분이 특정 국가에 대한 나쁜 인식을 줄 우려가 있다고 봤다"며 "(용역보고서를) 일부러 숨기거나 은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해외취업의 양지만 강조하면 청년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코트라의 K-MOVE 사업 시작 후 해외취업에 나선 청년 1천222명 중 퇴사자는 31.7%인 388명이었고, 14.2%인 173명은 '연락두절' 상태라고 작년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다.

2016년 감사원의 감사 결과 2015년 K-MOVE 취업자 10명 중 8~9명은 2천만원도 안되는 연간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난 속에 해외취업자 수는 2014년 1천679명에서 지난해 5천 명을 웃돌 정도로 늘고 있지만, 이러한 실패 사례는 정부 홍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박창규 글로벌잡센터 대표는 "실상을 알지 못한 채 진로나 직무 설계를 하지 않고 나가면 만족도가 높지 않다"며 "해외 경험이 귀국 뒤 직업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성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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