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오아시스는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 in anger)며 우리의 영혼을 달래줬지만, 지금은 딱 그 반대로 해야 할 때 같다. 쇠는 달았을 때 쳐야 한다.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too)가 들불처럼 번지자 '피로'를 토로하거나 '무고'를 주장하며 맞서는 목소리도 같이 나온다. 여느 청문회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그런 일 절대 없었다"는 '모르쇠' 답변이 이어진다. 피해자의 외모나 능력 등 본질과 상관없는 점을 끄집어내 비하하는 '익숙한 수순'도 밟는다.
성폭력은 힘과 권력의 문제라는 점에서 많은 권력자들은 '미투' 캠페인이 심히 당황스러울 듯하다. 지금껏 권력에 취해 마음대로 혀와 손을 놀렸는데 그게 문제라고 지적하니 말이다. 남녀 불문이다.
그런데 당황이라도 하면 다행일까. 입만 열면 음담패설을 내뱉었으면서도, 노래방에서 싫다는 데도 기어이 '블루스'를 추자며 몸을 비볐음에도 '미투'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자기가 한 짓은 '유머'였고 '애정표현'이었다고 확신한다. 신용카드를 성희롱에 응용하는 창의력에 뿌듯해하고, "상대방도 싫어하지 않았다"는 환각에 취해서.
'미투'라고 외치는 피해자의 능력을 문제삼아 프레임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엄연히 성폭력 범죄자임에도 다른 능력이 출중하다며 감싸안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전자발찌를 찬 하층계급에게는 이구동성 가차없이 비난을 퍼부으면서, 입과 손으로 숱한 성폭력을 저질렀음에도 고관대작, 화이트칼라, 지성인, 예술인들을 향해서는 목소리가 갈린다. 일부 특정인의 문제를 무리하게 집단의 문제로 일반화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미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며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설사 그렇다해도 지금의 거대한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성난 얼굴로 돌아봐야한다. 화를 안 냈더니, 하지 말라고 외치지 않았더니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라도 해야한다. "우리 때는 더한 일도 참았어" "해봤자 안 되는 일이야"라는 소리는 부디 넣어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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