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정우 "영화 속 김주혁 대사, 저에게 하는 말 같았죠"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의 주인공 연흥부(정우 분)는 영문 제목 'The Revolutionist'의 의미 그대로 혁명가다. 처음부터 변혁을 꿈꾼 건 아니었다. 원래 흥부는 야한 소설을 펴내 돈을 꽤 번 인물로 현실에 만족하는 인물이었다.
잃어버린 형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엽색소설에 대한 대중의 이중적 반응에 개의치 않는 소탈한 면모도 지녔다. 그러다가 힘없는 백성과 민란군의 정신적 지주 조혁(김주혁)과 그의 형인 세도정치가 조항리(정진영)의 사연을 소설 '흥부전'에 풀어내고 혁명가로 거듭난다.
"흥부가 워낙 우여곡절이 많은 캐릭터다 보니 체력보다는 심리적으로 힘들었어요. 형 놀부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해 깨달음을 주는 조혁에 대한 감정, 제자에 대한 감정, 영화에 대한 저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혔어요. 흥부가 그분들을 한분씩 거쳐 간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조금씩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해서 쉽지 않았죠."
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는 "자괴감을 느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2001년 '7인의 새벽'의 단역으로 데뷔한 정우에게 사극은 '흥부'가 처음이다.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 역할을 맡으며 일약 주연급으로 도약한 이후 '쎄시봉', '히말라야', '재심' 등에서 주로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 반면 연흥부는 워낙 괴짜인 데다 사건보다는 캐릭터에 무게가 실린 작품인 만큼 부담이 컸다.
혁명가로 변모하기 전 흥부는 모로 누운 채 포도알을 뜯으며 문학관을 논하는 한량 기질의 작가다. "초중반까지는 캐릭터가 낯설게 다가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자세는 재미없겠다 싶어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글을 쓰기도 하고 그랬죠. 이야기가 진지해지는 중반 이후엔 극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잡으려 했고요."
정진영 등 연기력을 더이상 논할 필요가 없는 선배들과 호흡을 맞춘 첫 사극은 18년차 배우에게도 배움이 됐다. "선배들과 연기하면서 사극의 매력을 많이 느꼈죠. 저는 제 역할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선배들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사할 때 정말 감탄했습니다."
정우는 "시나리오를 보며 상상했던 것보다 어려운 작품이었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내 바닥을 보았다"며 유난히 겸손하게 말했다. "김주혁 선배님이 출연한다는 얘기를 듣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영화는 지난해 여름 촬영했고 김주혁은 가을에 세상을 떴다. 빈민촌에서 백성들을 돌보느라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늘 꿈을 꾸라"고 독려하는 조혁의 모습엔 현실의 김주혁이 묘하게 겹친다. 정우는 '흥부'의 김주혁을 전날 시사회에서 처음 봤다.
"맨 정신으로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았어요.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조혁이 흥부에게 하는 대사가 선배가 저에게 하는 말 같아서요. '흥부'는 저에게 한 작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배와 함께 한 작품이기 때문에 남다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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