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종교·정당서 성폭력 겪은 세 여성의 '미투' 프로젝트
"조직 성격 달라도 성폭력 은폐·축소는 판박이"…인터넷·책자 등 활동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대기업의 법무감사팀에서 일하던 '실비아'(이하 필명)씨는 2016년 7월 같은 부서 상사로부터 지속해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사내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도리어 허위사실 유포를 이유로 징계를 당했다. 사내에는 실비아씨의 평소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서울 시내 유명 성당의 합창단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고 2016년 11월 언론에 제보한 '카타리나'씨는 내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외부에 알렸다는 이유로 탈단 처리됐다. 다른 단원 일부는 그를 회유했다고 한다.
'도미니카'씨는 한 정당 전국위원이었던 남성에게 성희롱과 데이트폭력을 당했다고 지난해 10월 폭로하고 당기위원회에 제소했다. 가해 남성은 당에서 제명됐지만, 폭로 직후 일부 당직자는 해당 남성의 정치생명을 걱정하며 피해자를 비방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폭로 이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폭력을 경험한 세 여성이 모여 각자 사건 이후 벌어진 일을 기록하는 작업에 나서 눈길을 끈다.
최근 2년 사이 서로 다른 곳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실비아·카타리나·도미니카씨는 각자 사건이 처리되는 절차와 그 과정에서 겪은 일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 '프로젝트A'(가칭)를 준비하고 있다고 5일 밝혔다.
이들은 작업에 함께 나선 이유에 대해 "대기업·종교·정당 등 각기 성격이 판이한 조직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이후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모습이 놀랍도록 흡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 조직은 피해자의 발언을 막거나 제지하려 했고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을 옹호하거나 보호했다. 조직은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조직 구성원 등 주변 사람으로부터 2차 피해도 있었다.
이들은 "그렇다면 조직을 막론하고 성폭력 사건 대부분이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간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다고 봤다"며 "우리의 경험이 사적 영역의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이번 작업에서 성폭력 사건 자체를 다시 말하기보다는 사건을 폭로한 이후의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서로 공통점을 뽑아 내보일 계획이다.
이들은 먼저 설 연휴 이후 인터넷 연재 글로 공동 작업의 첫 결과를 선보일 예정이다.
2분기부터는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를 개설하고, 이후 가능하다면 책자 형태로도 작업 결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작업과 관련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작업이지만 가급적 유쾌하게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피해자가 완곡하게 말하면 '강하게 말하지 않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강하게 말하면 '너무 거칠게 말해 반감을 샀다', 차분하게 말하면 '고통을 호소하지 않아 믿을 수 없다', 울며 호소하면 '감정적이라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며 "피해자가 말하는 방식은 늘 꼬투리가 잡히지만 우리는 그런 틀에 박힌 피해자 상을 깨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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