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경기] 특수 사라진 전통시장…소비자도 "장보기 겁나요"
(서울=연합뉴스) 정열 강종훈 정빛나 기자 = "이제는 명절이라고 해서 사과·배 선물세트 안 갖다놔요. 재고로 썩히는 것보다야 안 파는 게 낫죠."
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재래시장에서 과일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 A씨는 '설 선물세트가 많지 않은 것 같다'는 말에 한숨부터 내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A씨는 "젊은 사람들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으로 가니 과일 점포 개수도 줄었다"며 "그냥 동네 손님들 상대로 과일 한 봉지라도 더 파는 편이 이득"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재래시장은 실제 '명절 대목'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다.
골목길을 따라 200개가량의 영세 점포들이 늘어서 있는데,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인데도 한산한 분위기였다.
명절 설 선물세트를 진열해 놓은 과일가게나 축산물 점포는 손으로 꼽힐 정도였다.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아예 문을 닫은 점포도 눈에 띄었다.
명절임을 알게 해주는 건 시장 곳곳에 비치된 설맞이 이벤트 안내 선간판과 현수막이 전부였다.
그나마 시장에 장을 보러 나온 중년의 여성 소비자들은 길거리 영세 점포 대신 시장 골목 한쪽에 있는 중소형 마트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이 시장에서 작은 건어물 상회를 운영했다는 B씨는 "매일 새벽 5시에 가락시장, 중부시장 등 도매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서 하루 치 장사를 하고 밤 10시 넘어 집에 간다"며 "이렇게 일해도 장사가 안되는 날은 카드결제 수수료에 도매가, 용달비 등을 제하고 나면 적자인 날도 있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B씨는 "날씨가 계속 추웠던 탓인지 도매가격도 계속 오른다"며 "아무리 시장 물건이라고 해도 손님들이 품질 좋은 것을 찾으니 구색은 맞춰야 하고, 가격은 계속 올라 괴롭다"고 토로했다.
인근의 한 축산물 점포 상인은 "김영란법 개정으로 한우 판매가 늘어날 거라고 하던데 우리는 오히려 주문량이 작년 설에 비해 반 토막"이라며 "마트와 백화점과 다르게 우리같은 소매상들은 물량을 소량만 취급하므로 선물 구성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소비자들도 하나같이 체감경기가 여전히 꽁꽁 얼어붙었다고 입을 모았다.
제수용품을 사러 나왔다는 김모(56·여)씨는 "차례상 한 번 차리려면 돈 수십만 원은 든다"며 "식료품 가격이 많이 올라 장 한 번 보고 나면 '도둑맞은 기분'이 들 정도로 장보기가 무섭다"고 혀를 내둘렀다.
또다른 주부 함모(60·여)씨는 "정부나 뉴스에서는 계속 물가가 안정됐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는데 피부에 전혀 와 닿지 않는다"며 "갈수록 사는 건 팍팍해지고 있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만 해서 뉴스를 보기 싫을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과 맞벌이라고 한 이모(33·여)씨는 "요새 외식을 하다 보면 물가가 오른 것이 실감난다"며 "정말 월급만 빼고 다 오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명절에 먹을 식재료는 재래시장에서 살 계획"이라며 "대형마트가 편하긴 하지만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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