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우익정권, 또다른 '시한폭탄' 서안 병합 강행할까
강경파 주도로 선별 병합안 수립 중…'비상식' 현실화하면 대변란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한 데 고무된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의 현 이스라엘 우익정부가 다음 단계로 점령 중인 요르단 강 서안을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1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익정권은 트럼프 행정부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과 대사관 이전 결정을 사실상 서안 지역 병합에 대한 승인으로 간주하면서 중동 정국을 뒤흔들 또 다른 대사변을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서안 지역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고 나설 경우 사실상 영토 부족으로 팔레스타인 독립국 건설이 불가능해 이른바 2국 해법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내 친이스라엘 세력과 합작해 예루살렘 수도 인정이라는 국제관계의 상식을 뒤엎는 대반전을 이뤄낸 이스라엘 우익세력들의 행보로 미뤄 서안 병합이라는 또 다른 비상식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익만을 염두에 둘 뿐 균형감이나 국제사회의 여론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병합 추진 세력들은 이미 지난달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이스라엘 의회 연설 당시 서안 병합 방침을 공개 천명했다. 이어 현재 네타냐후 내각의 최강경파로 알려진 나프탈리 베넷 교육장관 주도로 구체적 병합 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스라엘 의회 의장은 성서의 서안 지역을 의미하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포함한 국토 전 지역을 개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이 추진 중인 서안 병합계획 가운데 270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거주 중인 서안 전 지역을 병합할 경우 이스라엘 안보, 재정 측면에서 부담이 너무 크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이스라엘 시민으로 흡수할 경우 이스라엘 국민 가운데 팔레스타인 주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유대인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의한 내부 테러 가능성 등 안보상의 위협도 큰 불안 요인이다.
이런 만큼 병합 추진 세력들은 서안 전 지역을 병합하는 대신 유대인들의 정착촌 등을 위주로 한 선별 병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병합 대원칙은 최대한 많은 지역을 병합하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편입은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베넷 장관이 추진 중인 이른바 'C'지구 병합안은 서안 지역의 60%를 병합하는 것으로 유대 정착촌은 C지구의 약 7%에 해당한다.
C지구를 병합하면서 그곳의 팔레스타인 주민 30만 명에게는 이스라엘 시민권이나 현재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동일한 영주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시민권이나 영주권 소지 주민은 비록 검문을 거치지만 이스라엘 역내 자유통행이 허용된다.
그러나 만약 C지구 병합안을 택할 경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새로운 경계 획정과 함께 이에 대한 차단벽 등 안보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팔레스타인 다수 거주 지역과 차단을 위해서는 약 1천900km의 새로운 차단벽을 설치해야 하는데 설치 비용만 100억 달러(약 10조5천억 원)로 추계된다. 여기에 검문소 등 보안 시설을 추가하는 데는 더 큰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로서도 서안 병합을 위해서는 재정과 안보의 측면에서 만만치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서안을 병합할 경우 예상되는 정치적 파장이다.
서안 병합은 예루살렘 수도 인정 차원을 넘어 중동 정국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핵심 영토를 빼앗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스라엘 정부는 계엄령 선포와 함께 서안 지역 모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모든 기초 생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국방장관은 이에 따른 추가 비용만 연 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밖에 보건과 교육 기타 정부 서비스에 5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붕괴로 이스라엘 정부와의 안보 공조가 와해하면서 상당수 팔레스타인 병사들이 이스라엘로 총구를 돌릴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분노도 폭발할 것이다.
사태 진정을 위해 이스라엘군과 예비군 상당수가 불가피하게 서안 지역에 배치되면서 시리아 전선 등 다른 지역의 방비가 허술해질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인접 이집트 및 요르단과의 관계가 파탄 날 것이며 미국 내 유대 사회로부터도 따돌림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스라엘 우익정권에 비판적인 유대계 젊은층이 더욱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이는 병합을 사실상 방조한 트럼프 미 행정부에도 악영향을 미쳐 미국의 중동평화 중재 노력 수행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안보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무모한 병합방안에 대한 이스라엘 야당과 좌파진영의 반발도 거세다.
이스라엘 안보를 책임져온 275명의 퇴역 장성들로 결성된 단체가 NYT 기고를 통해 서안 병합을 '이스라엘이 피해야 할 노선'이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2국 해법만이 궁극적인 중동평화 해결책이며 이를 저해하는 서안 병합이라는 환상을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이스라엘 정계뿐 아니라 미국에도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으로 국제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우익정권이 자제할 전망이 크지 않은 만큼 서안 병합이라는 시한폭탄을 둘러싸고 또다시 일대 파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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